“원래는 미국에서 우수한 공과대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고 했었죠. 하지만 누군가가 정해준 길이 아니라 스스로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지난해 9월, 태재대는 신입생을 선발하고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저마다 다양한 배경과 국적, 서사를 가진 학생들이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형 대학을 지향하는 태재대에 모였다. 미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23년 9월 UC샌디에고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할 예정이었던 최민우(1학년) 씨는 누구나 알법한 대학이 아닌 한국의 신생 대학을 선택했다.
9월 학기제로 운영되는 태재대의 올해 신입생 정원은 100명이지만, 정원을 채우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지난해 첫 학생을 선발할 때도 국내에서만 373명이 지원했으나 외국인 학생을 포함해 최종적으로 32명을 선발했다.
입학 후 학생들은 1년간 혁신기초학부(Innovation Foundations) 과정을 거친다. 2학년부터는 관심 분야에 따라 인문사회학부·자연과학부·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학부·비즈니스혁신학부 중 전공 과정을 선택한다. 주전공과 부전공 형태로 전공을 이수하거나 다양한 학부를 융합한 자기설계전공을 선택할 수도 있다. 혁신기초학부를 포함해 모든 전공 과정 인공지능(AI)을 융합한 교육과정으로 설계했다.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다.
1년 동안 거치는 혁신기초학부 수업은 일반적인 대학 교양수업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혁신기초학부의 한 수업에서는 'UN의 해양 지속 가능성 모델'을 계획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수업에 필요한 이론 지식, 국가별 해양 상황 등에 대한 자료는 사전 링크를 통해 미리 온라인으로 학습한다. 본 수업은 온라인 화상 강의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그룹을 나눠 국가별 대변인이 된다. 수업은 토의 이후 자신이 맡은 포지션의 상황을 요약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리포트를 제출해야 마무리된다. 대부분 수업은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문제의식을 찾아내는 방식의 프로젝트성 수업이다.
수업을 진행한 데릭 놀트(Derrick M. Nault) 혁신기초학부 교수는 “단순 지식 전달식 교육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능동적 토론 학습과 롤플레이 활동을 접목했다”면서 “학생들이 세계적 이슈를 글로벌 화합과 다양성 측면에서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유익했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전했다.
태재대의 모든 수업과 프로그램은 학생 개개인의 학습 상태에 맞춰 진행된다. 대표적인 것은 '언어 학습지원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국적과 출신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인 만큼 태재대는 국제어학센터(Global Language Center)를 통해 한국어를 비롯한 영어·중국어·일본어·러시아어·컴퓨터 언어까지 다양한 언어 습득을 지원한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2개 국어를 구사한다.
모든 수업에서 토론이 이뤄지다 보니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공부해 온 학생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도 있다. 교육혁신원의 '디스커션 랩(Discussion Lab)'이다. 교실에서의 대화를 실습해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학생의 학습 준비를 통해 토론이 어려운 학생들의 적응과 참여를 지원한다.
정나영 대외협력센터장은 “학생의 성장을 위해 최적화된 프로그램으로 움직이는 곳이 태재대”라며 “교육혁신원 조직이 지속적인 분석을 통해 학생 맞춤형 수업으로 개선하고, 커리큘럼을 구성할 때도 교수진뿐 아니라 국내외 교육과정 검토위원회가 정밀한 커리큘럼을 개발한다”고 설명했다.
태재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프로그램은 '글로벌 인게이지먼트(Global Engagement)'이다. 한국에서 시작해 학기별로 미국·중국·러시아·일본에 머무르면서 글로벌 현장 경험학습을 실시한다. 입학 후 1~2학기는 한국, 3~4학기는 미국 동서부, 5~6학기는 중국 일대, 7학기는 러시아, 8학기는 일본에 거주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도시별 환경, 인프라 등을 직접 경험한다.
현재 1학년 신입생은 모두 서울 서대문구 레지던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과 동아리 활동, 학생 자치활동 등이 이뤄진다.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전교생이 함께 생활한다.
학생들은 국가를 넘나들며 도시문제해결 프로젝트(Civic Project)를 통해 현장 중심의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게 된다. 직접 지역 문화와 사회에 투입돼 국가와 지역이 가진 문제를 조사하고 해결하는 학제 간 문제 기반 학습 모델이다. 교수진이 지도하는 팀 프로젝트로 구성해 각 팀의 관심사와 주제에 맞춰 설계된다. 전체 학생 모두가 함께 거주하면서 글로벌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이 기존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차별점이다.
튀니지 출신의 리나 젤리비(Lina Jellibi, 1학년) 씨는 “태재대가 가지고 있는 글로벌 인게이지먼트 프로그램은 태재대 입학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라며 “글로벌 도시에서 공부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배우고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태재대 글로벌선도원이 진행하는 대학혁신 펠로우십 프로그램도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를 원하는 학생이 그룹을 이뤄 프로젝트를 직접 설계하고 제안서를 제출해 심사 과정을 거친다. 방문 국가, 대상, 활동 내용 및 과제 등 프로그램 전반의 내용은 학생이 모두 직접 고안해 진행한다. 지난 2월에는 아시아대학혁신 펠로우십 프로그램에 2개 팀이 선정돼 일본과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관련 경비는 모두 장학금으로 지원받았다.
대부분의 학생은 졸업과 동시에 대학과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마련이지만 태재대는 학생의 더 큰 미래를 위해 일종의 투자를 지속한다. △글로벌 리더 장학금 △창업 지원 장학금 △학문 후속 세대 양성 장학금 등 장학금 제도를 통해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한 학생을 지원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국제기구 및 비정부 기구에 취업하는 학생, 창업을 계획하는 학생, 우수한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에게도 모교의 지원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한 태재대의 목표는 '지속 가능한 디지털 문명사회를 이끌어 나갈 미래 리더 육성'이다.
정 센터장은 “대학은 리더로 성장하기 위한 전인교육을 통해 21세기 글로벌 리더가 갖춰야 할 핵심역량을 갖추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더 큰 세상으로 나가서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펼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태재대의 기본 방향” 이라고 전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