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1위 삼성디스플레이는 일본 캐논토키 증착기로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과 애플 아이폰용 OLED 패널을 만들고 있다. LG디스플레이도 이 회사 증착기로 아이폰용 OLED 패널을 제조 중이다. 삼성, LG 뿐만 아니라 중국 BOE를 비롯해 비전옥스, CSOT도 캐논토키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증착기는 OLED 제조에 필수인 장비다. OLED는 유기물을 사용하는 디스플레이로, 유기물을 화소(픽셀)로 만드는 공정이 가장 중요한 데, 이를 실현하는 장비가 바로 증착기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OLED 양산에 성공하며 글로벌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 증착기는 캐논토키에 의존했다.
선점 효과가 컸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캐논토키 장비로 양산에 성공하자 후발주자들도 이를 뒤따랐다. 디스플레이 수요처에서도 검증된 장비를 쓰고 싶어 해 캐논토키는 점점 더 높게 독점적 성벽을 구축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캐논토키가 6세대 증착기로 거둔 매출은 전 세계에서 무려 10조원(부대장비·부품 포함)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캐논토키 증착기는 그야말로 줄을 서야 살 수 있는 장비가 됐다. 캐논토키가 '슈퍼 을'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선익시스템 8.6세대 OLED 증착기 상용화는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캐논토키의 벽을 뛰어 넘은 데 의미가 크다. 게다가 8.6세대 증착기는 세상에 없던 설비다. 캐논토키도 이제 막 삼성디스플레이에 공급하기 시작한 설비다.
선익시스템은 연구개발용(R&D) 장비는 다수 공급했어도 6세대 증착기를 양산라인에 한 번 정도(LG디스플레이 E5) 공급했던, 경쟁사에 비해 이력이 짧다. 이런 안팎의 불리한 환경에도 선익시스템은 8.6세대 증착기 상용화를 이뤄냈다.
BOE가 8.6세대 OLED를 준비하는 건 애플 노트북(맥북) 공급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전 세계 IT 업계에서 품질 기준이 매우 까다로운 기업으로 꼽힌다. 선익시스템 기술력이 BOE 요구 수준을 맞췄을 뿐만 아니라 최종 고객사인 애플 기준도 충족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애플은 디스플레이 공급망(SCM)에 적극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OE가 원래 캐논토키의 증착장비를 선호하는 애플과 사전교감 없이 선익을 선택했을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선익의 이번 상용화는 다른 디스플레이 업계에도 선례가 돼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해 8.6세대 투자 가능성이 언급되는 중국 비전옥스나 다른 업체들로 확산될 전망이다. 캐논토키의 독점 구도는 이제 캐논토키와 선익시스템이 경쟁하는 구도로 바뀌게 됐다.
선익시스템이 한국 장비 산업사에 기록될 성과를 낸 것은 그동안 적자에도 기술 개발을 지속해 온 결실로 해석된다. 선익은 박재규 동아엘텍 회장이 2009년 인수한 이후 증착기 기술개발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그 결과 2014년 6세대 증착기 개발에 성공했다. 2017년 LG디스플레이 구미 E5 양산라인 공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 양산 공급은 없었다. 수년 간 수주를 못 했음에도 선익은 꾸준히 기술개발을 이어오면서 관련 특허를 확보하고 8.6세대 증착기 상용화라는 더 큰 결실을 거두는데 성공했다.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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