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공지능(AI) 의료기기를 건강보험에 정식 등재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임상적 유용성과 급여 적정성 등 세부 평가기준을 마련, 기술 가치에 따른 합리적 보상(수가)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업계는 국내 AI 의료기기 시장 개화를 기대하면서도 등재 절차와 수가 합리화가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29일 정부기관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AI 기반 의료기술 급여 적정성 평가기준과 등재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연내 추진안을 마련하고, 내년 전문가와 산업계 의견 수렴 뒤 2026년 정식 등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AI 의료기기는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와 신의료기술평가 유예제도를 통해 한시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 기존에 없던 기술인 데다 환자 대상 임상·제도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임시 등재'된 상태다. 2~3년가량 데이터를 확보한 뒤 추후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해 정식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심평원은 작년부터 AI의료기기 건강보험 '임시 등재' 사례가 본격화됨에 따라 추후 정식 등재를 위한 제도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실제 지난해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된 31개 품목 중 AI 솔루션은 절반에 가까운 14개로 나타났다. 제이엘케이, 뷰노, 루닛, 코어라인소프트, 딥노이드 등 업체들은 자사 주요 솔루션을 혁신의료기기로 지정 후 비급여로 환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관건은 보상(수가) 방안이다. 심평원은 임시 등재 기간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기술 특성과 임상적 유효성, 급여적정성, 경제성 등을 고려해 수가 산정을 위한 세부 평가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기존 기술 대비 혁신성과 임상적 효과, 환자 수요, 대체 가능성 등이 주요 결정 원칙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심평원 관계자는 “아직 정식 등재를 위한 초기 검토 단계”라고 말했다.
의료AI 업계는 정부의 정식 등재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등재 절차와 수가 범위 등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임시 등재된 AI 의료기기는 15개 내외다. 대부분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영상 정보를 분석해 진단을 보조하거나 질병을 예측하는 솔루션이다.
임시 등재 후 기업은 정부가 수가를 지원하는 '선별급여'와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 항목으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선별급여 수가가 건당 최대 3000원선에 불과해 모든 업체가 상대적으로 금액대가 높은 비급여로 제품을 신청한 상태다.
산업계는 정부가 임시 등재를 통해 AI 의료기기 시장 진입을 지원하고 있지만, 수가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 정식 등재 시엔 합리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별급여 수가가 절대적으로 낮은데다 비급여 역시 상한선을 둬 시장이 활성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무분별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영상검사 비용 10~30% 수준의 비급여 상한을 적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식 등재 필수 과정인 신의료기술 평가 등 복잡한 절차 간소화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의료AI 업계 관계자는 “국내 의료기기 중 비급여 수가 상한제를 적용한 것은 AI 의료기기가 유일하다”면서 “진단 보조 솔루션은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데, 기존에 없던 기술이라는 이유로 신의료기술평가 과정에서 추가로 임상 데이터를 요구하는 등 복잡한 절차도 정식 등재 절차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