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한 고령화에 치매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노년층 일상대화 분석을 통해 일반적 치매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중앙치매센터가 최근 발표한 '중앙치매센터 연차보고서'를 보면 2023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제4차(2021~2025년) 치매관리종합계획에 따르면 이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2030년 136만명, 2050년 302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치매를 일으키는 대표적 퇴행성 뇌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오랜 기간 진행되지만 초기에 증상을 발견하지 못해 치매 단계로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혼자 사는 어르신은 매년 지자체 치매안심센터나 병원을 방문해 관리를 받는 게 좋지만 거동 어려움 등의 이유로 방치하다 뒤늦게 발견하곤 한다.
KERI 전기의료기기연구단 청각인지 뇌기능 연구팀 박영진 박사팀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창의형융합연구사업 지원을 받아 '노년층의 일상생활 발화 빅데이터 구축을 통한 AI 기반 퇴행성 뇌기능 저하 평가 기술 개발' 사업을 총괄기관으로서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서울대병원, 이화여대가 공동연구기관 및 위탁연구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사업단은 어르신들이 책을 읽거나 질문에 답하는 등 언어를 음성으로 표현하는 '발화'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기를 개발했다. 이를 통해 발화 내용, 청각인지 뇌파, 청력수준 등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경도인지장애 고위험 노인들을 선별 및 모니터링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고위험군 선별 및 관리가 필요한 이유는 65세 이상 정상인 치매 발생이 매년 1~2%인 반면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10~15%에 달하기 때문이다. 6년 장기 추적할 경우 경도인지장애 환자 80%가 치매에 걸리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기술의 목표는 편리함과 정확성이다. 가볍게 보청기 같은 기기를 착용하고 신경인지기능 검사기기 앱을 설치하면 된다. 사업단은 앱을 통해 일상생활 환경에서 주로 활용되는 발화 패러다임을 분석한다. 평균 20회 정도 대화를 주고받는 수준의 발화 정보를 분석해 80% 이상 민감도로 퇴행성 뇌기능 저하 고위험군을 선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어르신들은 발음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사투리를 쓰거나 난청으로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등 발화 정보 수집에 어려움이 많다. 사업단은 AI 및 청각인지 디코드 기술 등을 통해 이러한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해결해 가는 중이다.
KERI는 개발한 연구 결과를 활용해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노인복지관 등 지역사회 어르신 약 100명을 대상으로 실증을 진행해 현재까지 6명의 경도인지장애 환자와 7명의 의심 대상자 선별에 성공했다. 올해 8월까지 추가로 어르신 150명에 대한 실증을 통해 안산시 거주 노인들의 헬스케어 지원 및 기술을 고도화하고 이후 실증 희망 지자체를 발굴해 대상 범위를 1000명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박영진 박사는 “치매 조기발견을 통해 치료시기를 1년만 앞당겨도 인당 수천만원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천문학적인 국가적,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사업단에서는 청력 증강기기 기반의 청력 인지 기능 개선, 생성형 AI를 활용한 신경인지기능 검사기기의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창원=노동균기자 defros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