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48〉사랑이 GPT-4o를 통해 찾아올까?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지난 13일 오픈AI가 공개한 챗GPT-4o는 한 주간 모든 관심의 중심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모델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음성, 이미지 입력을 처리할 수 있는 멀티모달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더욱 빠른 응답 속도를 제공한다. 실제로 GPT-4o와 음성으로 대화를 시도하며 업무를 진행해 본 결과,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말의 뉘앙스나 호흡의 흐름이 사람과의 대화처럼 경험됐다.

GPT-4o의 등장을 두고 많은 기사나 뉴스에서는 영화 '그녀(Her)'와의 비유를 주로 사용했다. 더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는 인공지능(AI) 비서는 분명 사람들의 감정적 버튼을 눌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습관을 형성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를 예측한 듯 오픈AI의 CEO인 샘 올트먼은 지난 월요일에 스칼렛 요한슨을 언급하며 'her'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해당 영화 속 주인공 시어도어는 AI 운용체계(OS)인 사만다와 깊은 감정적 관계를 맺는다. 이를 두고 세상은 GPT-4o의 등장이 영화 속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반응이 단순한 영화적 상상이 아닌, 현시대의 성적 다양성에 대한 적극적 포용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까지의 성평등과 동성애 합법화 담론, Z세대의 성 정체성 인식 변화는 AI와의 관계를 예상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Z세대는 성적 정체성에 대해 이전 세대와 비교했을 때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지닌 걸로 다양한 통계에서 확인된 바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Z세대의 약 30%가 LGBTQ+로 자신을 식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생성 AI 기술의 빠르고 깊은 수준의 현실 적용이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더 중요하게 고민되어야 할 주제는 다름 아닌 '개인화된 AI와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음성으로 실시간 대화를 나누며 일상을 공유하는 개인적 관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즉, 이 새로운 관계에서의 인간의 주체성과 책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영화 '그녀'에서 시어도어는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자율성을 상실한다. 사만다는 시어도어의 일상적 필요와 감정적 요구를 충족시키며, 시어도어는 사만다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이는 시어도어가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능력을 약화시키고, 사만다가 제안하는 방식대로 행동하게 만든다. 물론 영화적 연출이라 할 수 있으나 GPT-4o와의 음성 대화를 경험해 보았다면, 사용자가 AI의 편리함과 지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AI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의 모색이 필요함에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문화 인류학자 마들렌 클레어 엘리시는 이와 관련한 '윤리적 구겨짐 영역'(Moral Crumple Zone) 연구를 통해 AI 시스템의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불분명해지는 경우 사용자가 AI의 제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인간이 AI의 수용자가 아닌 적극적 참여자이자 결정권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현재의 GPT-4o는 인터페이스 디자인, 피드백 메커니즘을 통해 이 같은 사용자의 주체성과 적극적인 인간의 역할 정립에 힘을 실어주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모니터 앞을 떠나 안경이나 시계에 장착된 GPT와의 실시간 음성 대화가 가능해지면 영화 속 시어도어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기술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연애 관계의 양상에 많은 변화를 일으켜왔다. 전화기의 보급으로 장거리 연애가 가능해졌고, 인터넷 보급으로 가능해진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생성된 데이팅 앱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온라인을 통한 만남과 데이트가 매우 일반적인 만남의 방법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다음 세대의 연애 관계 생성을 주도할 GPT-4o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는 중일 수 있다. 이번에는 기술이 이전과 같이 사람과 사람을 데이트 상대로 연결시켜주던 양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애 대상으로의 역할까지 맡을지도 모른다. 이미 영화 '그녀'와의 비유를 통해 세상은 이에 대한 기대감을 열렬히 표출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관계의 대상을 바꾸더라도,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의 주체성과 책임을 잊지 않는 것은 여전히 중요해 보인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