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때까지 제를 지내는 '인디언 기우제'라는 말이 있다. 정성들여 꾸준히 하는 경우를 비유하는데, 글로벌 블록버스터를 향한 바이오 업계의 노력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 비만치료제 열풍을 일으킨 위고비를 생산하는 덴마크 기업 '노보 노디스크'의 시가총액이 4500억달러로 덴마크 GDP인 40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이 제약회사가 1923년 설립됐으니 약 1세기에 걸친 '기우제' 끝에 나라를 구할 정도의 가치를 창출한 셈이다.
우리 업계도 바이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의 글로벌 강자이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의약품 위탁개발생산시장(CDMO)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팬데믹 시대에는 중소 3사가 전 세계 코로나19 진단키트 시장을 장악했다. 전통의 제약기업들은 미국 FDA 승인 의약품을 개발했고 바이오테크 기업들은 후보 물질의 기술 이전을 통해 해외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반도체, 이차전지 등 다른 산업에 비해 바이오산업의 세계적 명성은 아직 부족하다. 미션임파서블처럼 보이는 파괴적 혁신신약, 인공지능(AI) 의료기기 개발 난제를 풀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술개발이 앞서가야 한다. 새로운 기전과 기술을 활용해 개발된 신규 모달리티 의약품이 바이오 산업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유전자가위치료제, 항체약물접합체(ADC:Antibody Drug Conjugates), 다중항체, 마이크로바이옴 등 완전히 새로운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AI와 바이오의 융합이 가속화되면서 AI진단 보조, 디지털치료기기, 전자약 등 혁신적인 디지털 의료기기도 출시되고 있다.
최근 세계 최초로 유전자가위 치료제인 '카스게비'가 출시됐다. 2012년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카스9 논문이 발표된 지 10여년 만에 치료제가 개발됐다. 유전자 삽입과 교정 등의 편집 기술을 활용한 최초의 치료제를 인류가 획득한 것이다.
ADC는 항체와 약물을 링커로 결합시키는 차세대 기술이다. 타깃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약물을 전달할 수 있어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약효는 극대화 할 수 있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등 글로벌 제약사는 ADC, 다중항체 등 신규 모달리티 기술 선점을 위해 기술인수, 공동개발 및 인수합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ADC 플랫폼 기업인 피노바이오,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도 대규모 기술이전 성과를 거뒀다. 앞으로 더 많은 국내 바이오기업이 글로벌 빅파마와 협력하고, 이를 통해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창출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은 올해 ADC 제조공정 기술개발을 지원하며, 향후 국내 ADC 제조의 조기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차세대 유전체 고속분석기술(NGS:Next Generation Sequencing)의 보편화에 따라 인체 내 존재하는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하는 신약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작년 미국 FDA는 세레스의 '보우스트'를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보우스트'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인 '리바이오타'의 단점인 직장 투여를 경구 투여 방식으로 개선하면서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미생물연구 역량이 뛰어난 국내 바이오테크와 글로벌 빅파마 사이에 기술격차가 크지 않아 우리 기업의 초기 시장 진출이 가능한 분야다. 이를 위해 cGMP급 마이크로바이옴 의약품 시료 생산 시설 등 국내 인프라 조성이 요구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AI 신약개발에 나서고 있다. 딥마인드는 신약개발 AI 모델인 알파폴드3을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바이오네모 플랫폼을 통해 암젠과, 오픈AI는 사노피, 모더나와 협력하고 있다. 신약개발에 AI가 적용되면 개발 시간과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된다. 국내 기업도 AI플랫폼, 고품질·대용량 데이터, 임상시험 경쟁력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 속도전에 참여하고 있다. 연평균성장률 45%로 예상되는 AI 신약개발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선전이 기대된다.
디지털헬스 분야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으는 분야는 의료AI다. 구글, 엔비디아, 화웨이 등 정보기술(IT)기업이 AI 및 빅데이터 기반 디지털 의료기기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은 수술 전후의 장치와 플랫폼에 AI를 적용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엔비디아와 협력하기로 했다.
국내 허가된 AI의료기기는 2019년 10건에서 2023년 64건으로 증가했다. 지금까지 의료AI는 영상 분석에 집중되었지만 앞으로는 수술, 연구, 환자 기록과 저장 등으로 다원화되며 의료 전반의 AI화가 급진전될 전망이다. KEIT는 다양한 의무기록을 자동으로 표준화하는 의료AI 개발을 지원하고, 나아가 생성형AI 기술을 적용해서 의료AI 개발용 의료데이터를 합성하는 기술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바이오'를 미래를 바꿀 게임체인저로 인식하고 '첨단바이오 이니셔티브' 를 주창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바이오경제2.0' 및 '바이오제조 혁신전략'을 통해 바이오산업 강국으로 가는 세부 이정표를 제시했다. KEIT도 바이오산업기술개발사업 및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을 확대하고, 수요·공급기업이 연대 협력하는 산업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고 있다.
액션영화 '미션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는 'IMF(Impossible Mission Force)'라는 정보 기관의 도움을 받으며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완수한다. 우리 정부의 효과적 지원을 바탕으로 우리 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블록버스터급 대박을 터트리며 바이오 산업이 자동차, 반도체를 능가하는 국부창출의 원동력이 될 날을 고대한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 art@keit.re.kr
〈필자〉 정책·경제·통상 분야에 능통한 관료 출신 기관장이다. 군산제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리즈대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36회에 합격해 1993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지식경제부 투자유치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통상협력국장·통상교섭실장 등을 거쳤다. 주유럽연합(EU)·벨기에 대사관 상무관, KOTRA 교역지원센터장, KAIST 과학기술정책센터 연구교수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2022년 9월 R&D 전문기관 KEIT 원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