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 기반 국가발전 기틀 마련 故 최형섭 박사 20주기…KIST, 추모식 통해 뜻 되새겨

고 최형섭 박사. 초대 KIST 소장, 과학기술처 장관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29일 서거 20주기를 맞았다.
고 최형섭 박사. 초대 KIST 소장, 과학기술처 장관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29일 서거 20주기를 맞았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

흔히 알려진 루이 파스퇴르의 명언이다. 자신의 과학적 성취와 노력이 조국과 국민을 위해 쓰이길 바란 수많은 과학자들이 되새긴 말이다.

조국의 간곡한 바람에 해외에서의 영화를 버리고 귀국,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대 소장을 역임한 고 최형섭 박사도 그 중 하나다.

지금 세계는 과학기술을 무기로 치열한 싸움이 벌이고 있다. 기술력 확보 여부가 나라의 우열을 나눈다.

과학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이 시점에, 누구보다 이에 부합하는 삶을 산 최 박사의 뜻을 다시 돌아보는 자리가 열렸다. 29일 최 박사 20주기 추모식이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서 열렸다.

오상록 원장을 비롯한 KIST 보직자 30여명과 기관 참석자,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기관장단, 연우회 인사 등이 이번 20주기에 참여했다. 이들은 전쟁으로 피폐했던 조국을 과학기술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최 박사의 자취와 뜻을 되새겼다.

KIST 초창기 연구원들. 맨 앞줄 왼쪽부터 세번째가 고 최형섭 박사.
KIST 초창기 연구원들. 맨 앞줄 왼쪽부터 세번째가 고 최형섭 박사.

최 박사는 이미 해외에서 인정받는 연구자였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채광야금학을 전공하고 미국 노틀담대, 미네소타대에서 각각 석사·박사학위를 얻었는데, 캐나다 엘도라도 연구소 근무 시절,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광물제련에 활용되는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던 1965년 대통령 리셉션에 초대받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고, 국가 발전을 이루려면 기술 개발 연구소와 질적인 과학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듬해 박정희 대통령이 최 박사를 KIST 초대 소장으로 임명했고 '과학 한국' 역사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후 최 박사는 연구소 발전 기반을 다지는 한편, 인재 유치에 앞장섰다. 전 세계를 돌며 한인 과학자들에게 귀국을 호소했고, 1990년까지 1000명이 넘는 재외과학자들이 고국 KIST로 돌아오는데 힘썼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역두뇌유출'이었다.

최 박사는 연구개발(R&D)에 대한 인식도 바로 세웠다. 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KIST가 대신 수행하는 '선진국형 계약연구방식'을 도입, 대우자동차 전신인 신진자동차에 윤활유 기술을 전하기도 했다. 기술 국산화는 물론, 기업이 R&D 역량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1년에는 과학기술처 장관에 취임해 7년여 기간 최장수 장관으로 활동하며 대덕연구단지 설립, 과학기술발전 법적 토대 마련, 우수인재 영입 등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최 박사의 숨결이 닿은 KIST 설립 과정과 운영 시스템, 우리 과학기술 발전의 역사는 우리의 뒤를 좇는 개발도상국에 귀감이 되고 있다.

오상록 KIST 원장이 29일 열린 고 최형섭 박사 20주기 추모식에서 고인의 뜻을 되새기는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오상록 KIST 원장이 29일 열린 고 최형섭 박사 20주기 추모식에서 고인의 뜻을 되새기는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우리 후배 연구자들도 최 박사의 자취를 뒤따르고자 한다.

오상록 KIST 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고 최 박사는 전후 척박한 환경에서 우리나라가 오직 과학기술을 통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셨고, 경쟁력 있는 인재가 모이는 KIST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줬다”며 “그의 철학을 토대로 후배들이 사회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자로서 역할에 매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이 시대에 살아계셨다면 우리 후배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까 궁금하다”며 “그의 철학과 열정을 본받아 국가와 사회 난제 해결, 창조적 원천기술 확보라는 본연의 임무 달성을 위해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