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영화 '인터스텔라' 중 인류가 살아남기 힘든 운명 속에서 현실성 없는 계획의 성공을 믿으며 태양계 너머 머나먼 우주로 떠나는 우주비행사 쿠퍼의 대사다. 영화에서 미래의 인류는 심각한 기후변화로 잦은 가뭄과 산불, 극심한 식량부족에 시달렸고,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인류가 살 수 있는 조건의 행성을 찾는 것뿐이었다. 만약 주인공 쿠퍼가 새로운 행성을 찾는 데 실패한다면 인류의 역사 전체가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도전해야만 하는, 작금의 기후위기 시대의 상황과 유사해 보였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대부분 우주의 아름다움, 상대성 이론, 또는 아버지와 딸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기상학자로서는 그 모든 것의 시작인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과 황폐해진 지구에 눈길이 갔다. 그리고 이러한 기후재난은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 속의 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피부로 겪는 현실로 다가왔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난해는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보다 1.4℃ 이상 높았으며, 올해는 더 더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게다가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속출했다. 영국 런던은 기온이 평년보다 10℃ 이상 높은 40℃까지 오르며 이상 폭염이 발생했고, 리비아에는 열대성 폭풍을 동반한 폭우로 대홍수가 발생해 막대한 인명피해를 야기했다. 산불로 하와이 마우이섬 전체가 잿더미가 되는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3년은 전국 연평균 기온이 13.7도로 1973년 이후 역대 1위를 경신하였고, 태풍 카눈은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중 처음으로 내륙을 종단했으며, 남부지방은 712.3㎜의 역대 가장 많은 장맛비를 맞기도 했다.
기상청이 2022년에 발간한 '남한상세 기후변화 전망보고서'에 의하면, 21세기 후반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공통사회 경제경로(SSP)' 국가 기후변화 표준 시나리오에 따라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지금보다 최대 6.3℃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날씨와 기후는 식량, 질병 등 우리의 일상생활부터 산업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장기간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재배지 환경변화로 인한 과일과 채소 값 폭등, 홍수로 인해 거주지를 잃은 기후난민, 그리고 탄소중립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는 산업계의 변화 등 우리가 체감하는 기후변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렇게 기후위기가 우리 앞에 위협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에,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는 지난해 열린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정상회의에서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가 끝나고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시작됐다”며 기후변화의 현주소를 제시·경고했다.
WMO는 매년 인류가 당면한 주요 관심사를 주제로 정해 기상과 기후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올해는 세계기상의 날 주제를 '기후행동의 최전선에서'로 정하면서, 기후위기의 현실을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다. 지금까지 기후행동은 친환경 제품 소비, 에너지 절약, 대중교통 이용 등 개인의 영역으로 생각되어 왔지만, 이제는 개인을 넘어 국가 차원의 노력과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초국가적 협력을 촉구하기 위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해 3월 제58차 총회에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종합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하면서, 향후 10년(2021~2030)의 기후행동이 온난화 제한을 결정한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취약한 지역에 대한 적절한 재원 접근, 포용적 거버넌스, 지속가능한 저배출 성장 경로를 지원하는 경제 전반의 정책 패키지 등 국가 차원에서의 기후행동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0월 '기후·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등에 관한 법'을 제정하며 기후·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정보의 공동활용 등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범부처 차원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기상청은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국가 기후변화 표준 시나리오를 통해 기후위기 적응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국민 누구나 내가 사는 동네의 읍면동 단위까지 기후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기상서비스를 제공한다. 더불어 앞으로 나올 'IPCC 제7차 평가보고서(AR7) 종합보고서'에 대한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국제협력을 추진함으로써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행동에 앞장설 것이다.
파리협정에서 규정한 1.5℃가 눈앞까지 다가와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다시 한번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과 대사를 생각해보자. 인류는 지구가 황폐해지게 두지 않을 것이며, 늘 그랬듯이 인고의 시간 끝에 답을 찾을 것이다. 기후위기 극복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지구를 맞이할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기후행동은 불가피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후행동을 통해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미래를 키워나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평범한 국민이 있을 것이다. 기상청은 개인과 산업계, 공공기관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후행동 실천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또, 기후위기 감시·예측업무의 총괄·지원기관으로서 일상으로 다가온 기후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고, 기후행동의 최전선에서 지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유희동 기상청장
〈필자〉 유희동 기상청장은 연세대 기상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에 기상연구사로 기상청에 입사, 미국 오클라호마대에서 기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수치모델, 태풍, 예보상황 과장을 맡았으며 국장(고위공무원)으로서 기후국, 관측국, 기상서비스국, 예보국, 기획조저관 업무를 총괄했다. 2021년에 기상청 차장을 거쳐 2022년 6월에 기상청 청장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