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눠주기·뿌려주기'란 오명을 받던 중소기업 연구개발(R&D) 지원체계 개편에 속도를 낸다. 융자와 연계한 R&D 사업으로 혁신 기술 보유 중소기업의 사업화 촉진에 중점을 뒀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기술보증기금은 최근 정책혼합(폴리시믹스) 기반 R&D 전주기 지원방안 연구에 착수했다. 오는 10월까지 융자·조세지원·출연금 등 정부 R&D 재정지원 방식별 성과를 분석하고, 기존 R&D 보증 사업에 세제 혜택·출연·보조금 등 정책지원을 결합하는 모델을 도출한다.
기보는 주요 선진국 융자 연계 R&D 정책 사례를 중심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이를 참고해 한국만의 융자형 R&D 구조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다.
융자형 R&D는 정부가 R&D 재원 일부를 은행에 예치하고, 중소기업은 은행에서 저금리로 R&D 자금을 대출받는 방식이다. 기업은 R&D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정부 R&D 지원에 대한 기업 책임을 높일 수 있다.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이 융자 기반 R&D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저금리로 기업 이자 부담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핀란드 융자형 R&D는 최대 8년간 연 1% 이율로 R&D 대출을 제공한다. 대출 지원 최대한도는 없고, R&D 프로젝트당 타당성 검토를 거쳐 금액을 결정한다.
한국도 중소기업 융자형 R&D 사업을 도입하려는 것은 기존 출연·보조금 중심 R&D 지원이 기업 자체 혁신 유도에 한계가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2022년 중소벤처기업부 R&D 과제 성공률은 94.9%를 기록했지만, 사업화 성공율은 53.5%에 그친 것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성공할 수 있는 과제만 수행하다 보니, R&D 이후 매출 창출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지난달 30일 발표한 제22대 국회 입법정책 가이드북에서 “출연 방식에 기반한 천편일률적인 지원에서 중소기업 성장단계와 특성을 고려해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간 벤처캐피털(VC)이 선 투자한 기업에 정부도 같이 투자하는 투자형 R&D와 융자형 R&D를 예로 들었다.
중기부는 지금까지의 중소기업 R&D 사업 분석을 토대로 미래전략 방안을 마련한 상황이다. 단기로는 투·융자 방식을 활용해 출연 R&D를 보완하고, 장기적으로는 세제·보조금 등을 더한 정책 조합 지원으로 전환한다.
중기부는 이를 위해 필요한 입법사항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현행 중소기업 기술혁신 촉진법은 기술혁신사업에 드는 비용을 출연, 보조, 계약 등의 방식으로 지원하도록 규정했다. 또 중소기업이 조달한 R&D 자금 상환에 실패했을 경우에 대한 해결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중기부 관계자는 “혁신 중소기업 기술 사업화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융자와 기타 정책지원 결합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해외 사례를 면밀히 살펴보고 한국형 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