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스타트업 생태계는 2023년에 벤처 캐피털 투자가 전년 대비 35% 감소해 총 26억 스위스 프랑 (3조 9,784억 6,800만 원)에 달하는 등 눈에 띄는 침체를 겪었다. 투자 규모 감소에도 불구하고 펀딩 라운드 수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돼 383건에서 397건으로 소폭 증가했다.
생명공학 및 의료기술 스타트업은 투자가 증가해 생명공학 스타트업 펀딩 금액은 22% 증가한 4억 9,200만 스위스 프랑(7,035억 6,000만 원)을 기록했으며 의료기술 스타트업 펀딩 금액은 41% 증가한 3억 7900만 스위스 프랑 (5,419억 7,000만 원)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올해 스위스 스타트업 업계의 현황은 어떨까? 지난 5월 30일,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에서 열린 스타트업 행사인 스타트업데이즈(startup days)에 참석해 스위스 스타트업을 만나고, 스위스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알아봤다. 이번 컨퍼런스에는 1,300명이 참석했는데, 이는 스위스 인구가 877만 6000명(2022년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가지 프로그램 중 첫 번째는 영스터 피칭(Youngsters Pitching)이었다. 120개 이상의 지원서 중에서 전문 심사단은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2년 이내에 설립된 스타트업 18개를 선택했다. 현장에서 18개 스타트업의 피칭 후 3개 스타트업이 심사위원단에게서 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이 선정한 스타트업 3개 업체는 CAD 설계를 기계 지침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마누카이 Manukai, 박막 리튬 니오베이트를 위한 생산 등급 광자 파운드리를 만드는 라이티움 Lightium, 로봇 감각 피부 기술을 통해 로봇에 고급 감지 기능을 장착한 인빌 Inveel이었다.
18개 스타트업 피칭에 이어 이어진 ‘스위스 스타트업 생태계 현황에 대한 성찰’도 통찰력이 있었다. 스위스 스타트업은 ETH(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EPFL(로잔 연방 공과대학교) 및 기타 명문 대학에서 수행되는 학문적 연구를 기반으로 창업한 경우가 많아서 기술력이 뛰어나며 대부분 취리히와 로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스위스의 이 강한 교육 시스템은 하이테크 스타트업을 위한 탄탄한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무대에 선 젊은 창업가들은 기후 변화와 ESG에 대해 큰 관심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에 부합하는 솔루션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스위스 스타트업의 놀라운 기술력에 놀란 반면 이번 컨퍼런스에서 아쉬운 점은 스타트업 부스였다. 많은 스타트업 부스를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부스에는 인큐베이터,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기타 스타트업 서비스 제공업체가 대부분이었다. 스타트업 부스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부 스타트업은 액셀러레이터에서 제공하는 부스 하나에 서너 개 회사의 제품을 다 밀어 넣어야 했다. 이 때문에 방문자 입장에서는 스타트업 피칭에 참석 하거나 파란 목걸이를 건 창업가들과 일일이 네트워킹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다. 이번 스타트업데이즈에서 필자가 만난 7개의 흥미로운 스타트업은 다음과 같다.
◇인빌
취리히 스타트업 인빌(Inveel)은 로봇 감각 피부 기술을 통해 로봇에 고급 감지 기능을 제공한다. 인벨의 기술은 넓은 면적의 폴리머 표면에 나노전극을 인쇄함으로써 로봇에 촉각을 제공해 다양한 영역에서 로봇의 안전성, 효율성 및 적응성을 크게 향상 한다. 스타트업데이즈에서 열린 ‘Youngster Pitching 2024’의 공동 3위 우승자이기도 했다.
◇리버킨
취리히 스타트업 리버킨(Riverkin)은 물 흐름, 온도, 침전물 및 전도도를 측정하는 초저전력 센서를 배치해 필요한 위치와 순간에 데이터를 수집, 홍수나 산사태와 같은 극단적인 사건을 감지할 수 있다. 초저전력이며 원격으로 데이터를 전송 가능한 리버킨의 센서는 공간적, 시간적 해상도 데이터를 제공하여 담수 시스템을 관리하는 방식을 바꿔나가고 있다.
◇알터에고
반품은 온라인 패션의 상위 5대 과제 중 하나로 분류된다. 취리히 스타트업 알터에고 (AlterEgo)는 전자상거래에서 활동하는 D2C(Direct To Customer) 브랜드에 가상현실 솔루션을 제공한다. 사용자가 자신의 신체 치수에 맞게 3D 아바타를 만들면 디지털 방식으로 옷을 입어볼 수 있도록 하고, 신체 형태에 따라 상품의 핏을 보여주어 반품의 필요성을 줄인다.
◇프로토니카
암은 사망원인 2위이다. 양성자 치료는 기존 방사선치료와 달리 엑스레이 대신 양성자를 이용해 부작용과 2차 암 발병 위험을 줄이면서도 치료 기간을 단 한 번으로 단축할 기회를 제공한다. 양성자치료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빔 진단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로잔 스타트업 프로토니카(Protonica)는 가장 성능이 뛰어난 양성자 빔 검출기를 제공해 양성자 치료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로보아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출신팀이 설립한 로보아(Roboa)는 뱀 모양의 로봇으로 밀폐된 공간에 들어가 재해 피해자의 생명을 구하고 산업 공장을 점검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운영 안전성을 향상한다.
◇헤기아스
취리히 스타트업 헤기아스(HEGIAS)는 스위스의 부동산 테크 회사로서 사용자들이 3D 모델(예: IFC)을 기반으로 HEGIAS 시뮬레이터를 사용하여 도면화된 건물을 검사, 체험 및 논의할 수 있게 도와준다. 가상 현실을 통해 사용자가 원격으로 브라우저에서 도면을 3D로 구성할 수 있다.
◇아브린카
토마스 로더(Thomas Roder)는 베른대학교 박사 과정 동안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의 게놈을 쉽게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는 오픈 게놈 브라우저(OpenGenomeBrowser)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발효식품 산업에 이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소프트웨어를 시장에 출시하고 지속적인 개발을 보장하기 위해 스타트업 아브린카(Abrinca)를 설립했다.
인공지능은 모든 부문에 걸쳐 변화를 일으키는 힘
스위스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펀딩은 지난해 크게 감소했다. 제프론(Zefyron)의 스타트업 데이터에 따르면, 스위스 인공지능 기업은 2023년 총 1억 2,900만 스위스 프랑(1,844억 7,000만 원)의 자금을 확보했는데, 이는 2022년 5억 6,100만 스위스 프랑(8,022억 3,000만원)에 비해 77% 감소한 수치이다. 2023년에는 총 56건의 인공지능 펀딩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2022년에 기록된 110건의 절반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스위스의 모든 업계에서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분야다. 업힐 컨퍼런스(Uphill Conf)와 같은 인공지능 중심 컨퍼런스에서는 스위스와 해외의 인공지능 전문가를 베른에 초대해 인공지능, 머신러닝의 트렌드를 소개 한다.
QBIT 캐피탈의 창립자인 조지 크네이서(Georges Khneysser)는 “2000년대 닷컴 버블을 되돌아보면 인공지능에 대한 과대 포장하는 세태는 부인할 수 없지만 이는 또한 엄청난 혁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의 초기에는 점진적인 발전을 보였다면 이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렇게 눈에 띄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인공지능 업계의 현황에 대해 설명 했다.
그는 또 최근 파리에서 열린 비바 테크 컨퍼런스(Viva Tech Conference)에서 “인공지능이 더 이상 틈새 기술이 아니라 모든 부문에 걸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혁신을 주도하고 성장과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향후 몇 년 동안 인공지능은 더욱 효율적인 프로세스, 개인화된 경험,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을 가능케해 계속해서 산업을 재편할 것으로 예상 된다.
글·사진=유채원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