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월 본격 적용되는 유럽연합(EU) 배터리 정책이 유럽 시장에서 한국의 이차전지 영향력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취약해 국내 기업에 유리할 것이란 분석이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4일 서울시 중구 한진빌딩에서 열린 'EU 배터리 정책 기업 활용 세미나'에서 “우리 기업들의 ESG 경쟁력은 중국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유럽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정면승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중요한 건 우리 배터리 기업의 준비 역량으로 규범을 파악해 잘 준비한다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U 배터리 규정은 원재료 채굴, 배터리 생산·유통, 폐배터리 재활용 등 전 생애주기에 걸친 규율이다. EU가 ESG 강화 차원에서 마련한 규정으로 지난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8월부터는 모든 배터리에 CE 마크 부착이 의무화되고, 적합성 평가 절차가 적용되는 등 규정이 구체화된다.
배터리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EU 회원국으로부터 배터리 회수나 리콜 조치 등 제재가 부과될 수 있어 기업으로선 부담 요인이다. 특히 배터리 가치사슬에서 환경과 인권 실사를 의무화하는 'EU 공급망 실사 지침'을 위반할 경우 순매출 5% 이상을 부과하는 금전적 제재를 받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국제 기준을 바탕으로 인권·노동·기업윤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협력사를 대상으로 컨설팅이나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ESG 성과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북미 진출이 어려워지자 유럽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어 EU 배터리 정책에 대한 국내 기업의 선제 대응이 요구된다. 중국 이차전지 기업의 EU 시장 점유율은 2019년 12%에서 지난해 42%로 3배 이상 성장했다.
박정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EU 정책이나 규범 설계가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하에 나오고 있어 중국으로서는 아픈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규범을 확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점검하고 대비해야 중국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짚었다.
박 부회장은 “EU가 시행하는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통상 전문인력 양성과 컴플라이언스(법규 준수)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며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많은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