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한국 재벌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확히 하고, 집중투표제 도입 확대 등을 통해 일반주주의 권리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당국에서도 경영판단원칙의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학계 논의에 힘을 보탰다.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는 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를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열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내 상장기업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주로 다뤘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을 소유집중기업의 지배구조에서 찾았다. 예컨대 상장기업의 지분 20% 안팎을 보유한 지배주주가 나머지 대다수 주식을 보유한 일반주주가 얻어야 할 이익을 부당하게 편취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다. 일감몰아주기나 부당지원행위 등을 통해 상장사의 지배주주가 보유한 이익을 개인회사로 이전하는 관행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나현승 고려대 교수 역시 지배주주가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사익을 편취하는 행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고,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를 도입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기업관여와 행동주의펀드 활성화 등 기업 외부에서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대안으로 내놓았다.
주주권 강화를 위한 주주총회 관련 제도 개선 방안도 논의됐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자주주총회 도입은 물론 이사가 주주이익을 고려해 업무를 집행할 수 있도록 이사 선임에 대한 주주 권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장기업들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은 의미가 보호해 구체적 상황에서 이사의 행위 기준으로 작동하기 어려워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에서도 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정책세미나에 직접 참석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경영판단원칙을 명시적으로 제도화한다면 기업경영에도 큰 제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학계 의견에 힘을 보탰다. 향후 밸류업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주주 권리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상법 개정 및 회사법 제정 등 후속 조치가 잇따를 전망이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