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전 세계가 화석연료로부터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빠르게 발전원을 전환하는 가운데 국방부의 10년 전 수준의 규제가 해상풍력 발전 확대를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은 17일 '해상풍력 발전기 500 피트 고도 제한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내고 여러 정부 기관이 합심해 안보와 기후 대응의 가치를 모두 고려한 합리적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현재 해상풍력 높이가 500피트(약 152.4m)를 넘는 경우 획일적으로 높이 조정 의견을 내고 있는데, 이 규제가 해상풍력 확대를 틀어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높이는 해수면으로부터 해상풍력 발전기 날개(블레이드)의 최상단까지 측정한 길이다. 군은 해상풍력 발전기의 날개가 레이더 망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150여m가 넘는 발전기는 허가하지 않고 있다. 2022년 제주, 인천, 전라남도 신안 등지의 해상풍력 사업이 모두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이는 해상풍력 발전 사업시 받아야 할 29개에 달하는 인허가 가운데 하나로 이런 규제를 모두 통과한 사업은 지난 10년 동안 4개에 불과한 실정(지난해 1월 기준)이다.
해상풍력 발전기를 설치하고자 하는 위치나 상황과 무관한 듯 보이는 획일적인 규제가 시대에 뒤처지고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 트렌드에 따라 세계 해상풍력 발전기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발전기 날개가 길수록 같은 바람에서도 보다 효과적인 전력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부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상업운전 중인 해상풍력 발전기의 평균 높이는 204m에 달했다. 우리 군의 규제 기준에 비해 50m 이상 높다. 150m는 12년 전인 2012년 해상풍력 발전기 평균 높이에 불과하다.
이런 군의 기준을 적용했을 때 현재 계획 중인 해상풍력 발전사업 가운데 설치가 가능한 발전기는 0.5%에 불과하다. 작년 12월 기준, 국내 해상풍력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사업은 84개 가운데 발전기 수와 용량을 파악할 수 있는 48개 사업을 기후솔루션이 검토한 결과, 46개의 사업이 5㎿급 이상의 발전기 설치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급 이상의 발전기 높이는 평균 170m이다. 모든 사업은 군 작전성 검토를 거쳐야 하는데 99% 넘는 발전기가 검토 기준에 걸린다.
이예진 기후솔루션 재생에너지인허가팀 연구원은 “국가 안보는 중요한 가치로서 필요한 규제라면 마땅히 지켜야 하지만, 현행 규제는 입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과도하고, 에너지 전환 추세에도 뒤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계부처가 뜻을 모은다면 해상풍력과 군 작전성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며 “기획재정부, 국무총리실 등 여러 부처를 조율할 수 있는 단위가 협력을 주도하고, 에너지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 해상풍력 보급의 물꼬를 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