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사는' 것은 즐겁지만, 동시에 어렵고 귀찮은 일이다. 현대인에게는 필요한 물건을 '빨리' '잘' 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왜냐면 이 땅의 수많은 엄마들, 가장들, 직장인들, 학생들,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을 꾸려 가기 위해, 인생을 '사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잉정보가 넘쳐나는 정보화 사회에서 이 바쁜 사람들은 모든 상품과 모든 정보를 모조리 다 보고 결정할 수 없다. 그럴 수 있었던 시대는 20년도 더 전에 이미 끝났다.
그래서 온라인 쇼핑의 발전 역사는 추천 알고리즘 발전의 역사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추천 알고리즘을 인공지능(AI)의 초기 형태로 본다. 이용자들이 0.5초라도 더 빨리, 더 편하게, 더 만족스러운 구매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추천 시스템과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 수년 간 엔지니어들이 피·땀·눈물을 갈아넣은 최적화의 노력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무엇을' '어떻게' 진열할지에 녹아 있다. 이런 추천 알고리즘의 최적화가 온라인 쇼핑몰 서비스에서 경쟁서비스와의 차별화 요소이자 혁신의 핵심이다.
공정위는 최근 쿠팡이 동명의 자사 온라인 쇼핑몰에서 자사의 상품(직매입 상품, 로켓배송 상품) 및 자체 브랜드 상품(PB상품)을 우선적으로 보이게 진열하고 추천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것이 타사의 상품인 오픈마켓 상품과의 경쟁을 저해해 거짓으로 소비자를 유인하는 불공정한 행위라는 취지로 무려 1400억원대의 역대 단일기업 대상 최고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쿠팡은 왜 로켓배송과 자체 직매입 상품, 물류시스템, 자체 브랜드 상품에 수십조의 투자를 했을까? 왜 이렇게 많은 투자를 해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갖게 된 상품들이 이용자에게 추천되도록 자사의 쇼핑몰에 진열하는 일을 한 것일까? 이것이 공정위가 1400억원대의 엄청난 과징금을 부과할 정도로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의 효용을 해한 것일까?
필자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공학도들 사이에서 유명한 경제학 원리로 '오컴의 면도날'이 있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직관적인 답이 진실인 경우가 많다는 경험칙적 원리다.
쿠팡이 자사의 상품을 쇼핑몰에서 눈에 띄게 진열하고 추천했다면 그것은 그저 그런 방식이 자사 쇼핑몰의 이용자에게 최고의 만족과 효용을 준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해야 이용자들이 쿠팡에서의 구매경험에 만족감을 느끼고 다른 경쟁사의 온라인 쇼핑몰보다 쿠팡의 서비스를 더 많이 쓰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경험적으로 보아도 로켓배송 상품의 충성고객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쿠팡 정도의 기업이라면 이런 추천 알고리즘이 쿠팡 온라인 쇼핑몰의 최적화 알고리즘이라는 충분한 근거도 있을 것이다.
이상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도 이 사건과 관련한 전문가 의견서에서 “커머스에서의 상품 검색 시스템은 검색어로 표현된 고객의 쇼핑 니즈를 해결해주는 추천의 맥락에서 구현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했다.
컴퓨터공학도이자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프로그래머)였던 필자가 보기에는 쿠팡의 추천 알고리즘은 쿠팡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고객 유입이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최적화 결과이자 그 어떤 것보다 치열한 온라인 쇼핑몰 시장의 경쟁이 생생하게 반영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공정거래법 자체가 이런 자유로운 경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지 않은가.
공정위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경쟁시장이나 경쟁의 범위를 너무 좁게 보고 조급하게 내린 결정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특히나 지금은 국가정책 관점에서도 알테쉬(알리바바, 테무, 쉬인)로 불리는 해외 온라인쇼핑몰과의 경쟁 문제가 정책적으로 더욱 중요한 때 아닌가.
아무도 '사는' 게 힘든 나라를 바라지 않는다. 다른 나라보다 더 '사는'게 편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 때에 규제가 너무 급한 것이 아닌가.
김정민 법무법인 인헌 파트너 변호사 jmk@inhe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