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어나가야 할 정문술의 기업가정신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게 돼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2014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215억원을 기부하며 이 같은 말을 남겼다. 2001년에도 300억원을 냈던 정 회장은 추가 기부를 통해 총 515억원이란 거액을 인재양성과 기술 개발에 쾌척했다. 그는 “이제 나이도 지긋해 미래전략대학원에 기부하면 학교 발전과 우리나라 장래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기부했다”고 말했다.

12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난 정문술 회장은 우리나라 기술 발전의 선구자이자 벤처 대부였다. 반도체 장비 개발에 도전했다 사채에 쫓겨 가족과 동반자살을 결심한 적도 있었지만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를 해외 기술 제휴나 이전 국산화했다. 핸들러로 자리 잡은 뒤에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속에서도 과감히 매출액을 뛰어넘는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선진국이 독점하던 SMD 마운터 개발에 성공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미래산업은 1999년 11월 국내 최초로 나스닥에 상장했다.

절정의 시기를 누릴 만도 했으나 정 회장은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2001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자녀들에게 승계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역사가 가르치듯이 '세습 권력'은 대부분 실패한다”고 했으며, 은퇴 직전 두 아들을 불러 “미래산업은 아쉽게도 내 것이 아니다. 사사로이 물려줄 수가 없구나”라고 양해를 구했다. 아들은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셨다”며 “저희는 언제까지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어렵게 일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기업인에 목숨과도 같은 회사를 승계하지 않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편법 승계가 여전한 이 때 정문술 전 회장이 보여준 모습은 큰 어른이자 기업인으로서 존경 받아 마땅하다.

정 회장은 항상 미래를 걱정했다. 막역한 사이였던 이광형 KAIST 총장은 “항상 10∼20년 뒤 한국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KAIST에 기부하며 그는 “국민을 먹여 살릴 인재를 기르고 기술을 개발해 달라”고 강조했다. 또 “이 돈을 모방하는데 쓰지 말고, 비범한 사람들이 모이게 하세요”라고 당부했다. KAIST 정문술 빌딩 1층 기념 동상 벽에 새겨진 이 문구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인재육성과 기술 개발을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한 정문술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다시 새기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