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과거와 현재의 정제된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 주역인 학생 역량을 키우는 활동이다. 산업사회 학교는 시민이 갖춰야 할 필수적 지식, 역량, 사회성을 길러주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학교 교육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룬 대표적 나라로 주목받아 왔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대한민국 산업화 원동력은 교육으로 길러낸 인재 힘이었다. 최근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교육의 혁명적 변화도 요구되고 있다.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핵심역량
많은 연구들에서 제시하는 인재가 갖춰야 할 핵심역량은 '개념적 지식(knowledge), 체화된 역량(skill), 인성과 태도(attitude)'로 요약할 수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인재를 선발할 때 주로 지식을 평가해 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정성이 강조되면서 시험 점수로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노동시장에서는 AI 등장으로 개인의 인지적 역량보다 사회적 기술 등 다른 역량이 더 높게 평가되기 시작했다는 연구가 등장하고 있다. 즉, 핵심역량 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요구되고 있다.
AI 발달은 단순히 암기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학습을 요구하고 있다. 즉, 단순 지식 암기를 넘어서 개념적 지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적용하고, 분석하고, 융합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창의적 활동에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인지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현재 학교 교육과 평가가 획기적으로 전환돼야 함을 의미한다.
토론과 프로젝트를 통해 체화된 역량(skill)을 키우는 고차원적 학습도 요구된다. 한 명의 교사가 수준과 학습 속도가 다른 학생을 대상으로 지식 기반 역량 계발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적절하지도 않다.
AI 발달은 아이러니하게도 학교 인성교육 강화도 요구하고 있다. 마이클 폴라니는 지식을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tacit knowledge)로 구분했다. AI는 형식지 학습에 매우 강점이 있지만 인간의 암묵지를 학습하는 것에 취약하다. AI가 인간 직관, 판단력, 창의성으로 표현되는 체화된 지식을 학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AI가 대체하기 힘들고 이런 인간의 특성이 교육적으로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
◇교육개혁 성공의 조건
교실혁명의 목표는 모든 학생들이 '현대에 맞는 개념적 지식, 체화된 역량, 인성과 태도와 같은 핵심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교육개혁 실험들이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 왔음에도 일반화된 성공사례를 찾기 힘들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사가 주체가 되지 않은 상명하달식 교육개혁은 실패한다. 교실에서 이뤄지는 교육 주체는 교사인데 외부적 강압에 의한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교사 주도성이 핵심 요소다. 둘째, 부분적 땜질식 개혁은 실패한다. 교육 시스템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부분적 개혁은 전체 구조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례가 많다. 교육과정, 수업, 평가, 피드백 과정, 교육 지원 인프라와 재정 지원, 상급학교 진학 등을 아우르는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교육 자원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업무 더하기 개혁'은 실패한다. 교사에게 시간과 자원 한계를 넘어서 부가적 업무를 요구하는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교사의 제한된 시간에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려면 '업무 효율화 개혁'이 필요하다. 넷째, 학교 문화와 괴리된 이벤트성 개혁은 실패한다. 일부 교사만 참여하는 보여주기식 사업은 당연히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학교 구성원의 마음을 모으고 교원학습공동체 운영을 통해 학교 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교실혁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종합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교사 주도성을 중심으로, 시스템적 접근을 하고, 교사의 추가적 업무 부담을 줄이면서, 학교 문화를 바꿀 수 있도록 진행돼야 한다. 이러한 교실혁명을 이뤄낼 수 있는 주체는 결국 '교사'이기 때문이며, 이것이 '교사가 이끄는 교실혁명'이라는 정책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교실혁명을 위한 교원역량 체계
교사가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수업을 디자인하고, 교수·학습 과정을 운영하고, 학생의 성취수준을 평가하고, 학습 결과를 기록하고,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하는 전 과정에서 다양한 역량이 요구된다.
수업과 관련 교사가 갖춰야 할 역량은 크게 3가지 지식을 필요로 하는데 '교과 내용 지식, 교육학적 지식, 교수공학적 지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비 교사와 현직 교사 모두 이러한 내용으로 교육과 연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교사가 이러한 지식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훌륭한 수업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세 가지 지식을 체화한 역량을 바탕으로 실제 수업 내용과 상황, 대상에 맞게 진행돼야 훌륭한 수업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교사 수업 역량은 지식 종류로는 암묵지에 해당한다. 수업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art)'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가 제시한 '교실혁명을 위한 교원역량 체계'는 교사에게 필요한 형식지와 암묵지의 체계를 반영하고 있다. 이 체계는 이해를 바탕으로 활용하고, 그 결과의 나눔을 통해 성찰하고 혁신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새롭게 제공되는 도구인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수업을 진행함으로써 제한된 시간 속에서 더 높은 교육적 성과를 이뤄 내도록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도구 사용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수업이 바뀌지 않는다. 왜 필요한지, 내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수업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체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사가 이끄는 교실혁명
개인이나 조직의 변화와 혁신 과정에는 어려움이 수반된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저항감을 갖는다. 조직과 국가적 제도의 경우에는 외부적 충격에 의해 변화가 생겨도 빠르게 원래 상태로 회귀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그래서 혁신은 성공하기 어렵다.
AI 디지털교과서가 내년에 도입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이 있다. 교실 수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과 진정한 미래교육을 구현하게 될 것이라는 긍정론이 그것이다. 결국 수업 질은 AI 디지털교과서 시스템, 인프라와 자원, 학교장 리더십, 학생과 학부모 참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내년 3월에 펼쳐질 교실의 변화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교사 역량과 열정이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과 관련한 교원 연수 첫 번째 과제는 학교 변화를 이끌 선도교사 양성이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3년 간 수업혁신에 의지와 전문성을 갖춘 '교실혁명 선도교사'를 총 3만4000명까지 양성할 계획이다. 두 번째 과제는 모든 교원을 위한 성장형·인증형 연수의 지원이다. 이를 위해 교사의 디지털 역량 편차, 개개인 선호와 특성에 따른 연수를 준비하고 있다. 셋째,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이 학교 문화로 정착되도록 교사 개인과 그룹 차원을 넘어 학교 차원에서의 노력을 추동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3000개 학교를 시작으로 3년간 전체 초·중·고(1만2000교)에 대한 찾아가는 연수를 제공할 계획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3인칭 관찰자 관점이다.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창의적 수업을 통해 교실 미래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교사다. 교사는 수업을 창조해내는 예술가이며, 교사 역량에 의해 수업 질이 결정된다. 교사가 이끄는 교실혁명은 이미 시작됐다. AI 디지털교과서와 함께 모든 학생들이 소질, 학업수준, 학습속도에 맞는 개인별 맞춤형 학습을 하고 있는 교실 수업을 상상해본다.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필자 소개〉
정제영 교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을 맡고 있는 미래교육 전문가다. 정 원장은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4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사무관과 서기관을 거치며 교육정책 기획 및 집행을 수행했다.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해 교육학과장, 호크마교양대학장, 기획처장, 미래교육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과 학술정보 시스템 디지털 대전환을 선도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