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이 27년 만에 이루어졌다. 대교협이 지난달 1,509명이 증가한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함으로써 의대 정원은 4567명으로 늘어났다. 대법원은 19일 의사단체 등이 신청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의사들은 증원 백지화 주장보다 늘어난 의사 수를 바탕으로 K-의학을 세우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금부터는 의대 증원을 통한 한국 교육 개선도 모색해야 한다. 늘어난 의대 정원 탓에 한국 교육이 더 황폐화할 수 있다는 주장은 교육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한다면 대안 없는 비판보다는 '하늘에 방망이 달기보다 어려운' 의대 가기 위해 발생한 나비 효과의 나쁜 문제점을 고치는 데 온 힘을 써야 한다.
필자는 진학 교육의 최정점에 있는 의대의 선발 변화가 점수 따기 위주의 한국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늘어난 의대 정원은 입시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번에 정원이 대폭 늘어난 지방 의대들이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 최저 제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공부의 신'이 아니라 지적능력과 인성, 윤리의식을 겸비한 '진정한' 인재들이 의대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25학년도 입시에서 26개 지방대 의대 가운데 18개 의대가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의 신입생을 뽑는 건 고무적이다.
유념할 것은 비율만큼이나 전형 방법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다. 일각에서 지역균형선발의 대폭 확대가 한국 의료의 질적인 저하를 가져올 것이란 우려를 하지만 이는 기우다. 독일 의대는 성적(30%) + 대학 자체선발(60%) + 적성검사를 통한 할당제(10%)로 선발한다. 적성검사를 통한 선발은 학교 성적과 관계가 없다. 이렇게 의사를 배출하는 독일 의학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독일의 의약 회사 바이오엔테크는 화이자와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했다.
어느 나라 의대건 지적 능력을 중시하지만, 한국처럼 최우수 인재가 꼭 의대에 몰려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2023학년도 수능 만점자 3명은 모두 서울대 의대에 지원해 합격했다. 진학 전문교사들 말에 따르면 의대는 “영리하면서 끈질긴 학생”이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의학과 천재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필자는 부부가 의사인 한 셀럽이 자녀를 의대에 보내지 않은 결정을 이해한다. AI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시대에 독과점에서 비롯된 블루오션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우수 인재가 의대로만 쏠리는 건 국가가 나서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얼마 전 NASA를 표방하며 문을 연 우주항공청 1급 본부장 연봉을 대통령 연봉과 같은 2억 5000만 원으로 책정한 건 잘한 일이다. 이 결정은 미래 세대들에게 '우주 개척'의 꿈을 심어주고 공학도들에게는 '연구만 해도 잘 살 수 있다'란 메시지를 줄 것이다.
노자 도덕경에 있는 거피취자(去彼取此)는 멀리 있는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고 당장 눈앞에 있는 구체적인 걸 집중하라는 의미다. 의대 증원을 두고 생기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지 말자. 타인이 아닌 자신과 경쟁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교육을 하면 의대 올인 교육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교육이 마주한 거피취자다. 이 교육이 돼야 K-에듀의 기초를 닦을 수 있다. 의대 증원의 교육적 논의가'교육회복'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전호환 지방대학활성화특별위원회 위원장·동명대 총장 chunahh@tu.ac.kr
◆전호환 지방대학활성화특별위원회 위원장·동명대 총장=부산대 총장, 거점국립대 총장협의회장,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