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째 의정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임상시험 허가가 지난해 대비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까지 집단 휴진에 들어가면서 진료는 물론 '임상 공백'까지 현실화되고 있다.
23일 보건복지부 한국임상시험참여포털에 따르면 지난 2월 20일 전공의 집단사직 이후 6월 20일까지 4개월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임상시험은 총 328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428건과 비교해 30.4% 줄어든 수치다.
월별 임상시험 승인 건수로 보면 2월(20~29일) 12건, 3월 106건, 4월 91건, 5월 65건, 6월(1~20일) 54건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집단사직이 발발한 2월 20일 이후 3월 8일까지 첫 50일 동안은 전년 동기 대비 19.8%가량 줄었다.
하지만 3월 25일 전국의대교수협의회가 의대 증원과 전공의 처분에 반발해 외래진료 최소화 등 첫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임상시험 승인은 급격히 줄었다. 실제 전국 단위 의대 교수 집단행동이 본격화된 4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13건 줄었고, 5월 21건, 6월 46건 등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의정 갈등 초반에는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의대 교수 업무가 가중되며 임상시험이 줄었지만 이후 의대 교수들도 투쟁 대열에 합류, 신규 임상시험 진행이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신규 임상시험 착수도 어렵지만 기존 임상시험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진료, 수술까지 연기했는데 임상 연구를 하기는 더 어렵다”고 말했다.
임상시험이 줄면서 당장 제약사나 의료기기 업계는 큰 타격이 우려된다. 임상시험이 위축되면 의약품·의료기기 허가가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정 갈등 여파로 병원이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며 의약품·의료기기 판매은 물론 영업까지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임상시험까지 지연돼 고민이 크다.
서울대의대, 연세대의대, 가톨릭대의대, 성균관대의대 등 '빅5' 병원을 수련병원을 둔 의대를 포함해 대한의사협회 주도 개원의까지 무기한 집단휴진을 시행·검토하면서 신규 임상시험 감소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이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 싱가포르 등으로 다국적 임상시험 무대를 옮기는 상황에서 이번 의정갈등 여파는 '코리아 패싱'을 가속화할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미 병원 내방 영업과 학술대회 등 다양한 활동에 제약이 생겨 매출 타격이 우려되는데, 임상시험까지 막히면서 중장기 먹거리마저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고민이 크다”라고 말했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