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미네르바대, 2위 애리조나주립대, 6위 에꼴42, 12위 하버드대, 16위 서울대.
지난 7일 스위스 프랭클린 대학에서 발표한 세계 1072개 주요 대학의 혁신성을 평가하는 '2024 세계 혁신대학 랭킹(WURI 2024)' 순위다. 그동안 봐왔던 여느 대학 평가와는 다른 전혀 다른 결과다. 세계 대학 순위에서 상위권을 벗어나 본 적 없는 하버드가 12위에 머무른 반면, 캠퍼스 없는 대학을 표방한 미네르바대가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WURI랭킹 500위에는 '네오부티크 대학'이라고 불리는 신생 대학이 대거 포진했다.
조동성 스위스 정책전략연구원 이사장은 WURI랭킹 최초 설계자다. 인천대 총장 재직 당시 기존 정량적 지표로 대학을 줄 세우던 획일적인 대학평가를 벗어나 미래 지향적인 동시에, 혁신을 만들어가는 대학을 평가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여기에는 한국의 산업정책연구원, 세계 100여개 대학 연합회인 한자대학동맹(HLU), 유엔 산하기관 유엔훈련조사연구소(UNITSAR), 스위스프랭클린대학 테일러연구소(Taylor Institute) 등 4개 기관이 참여한다. 조 이사장을 만나 과거가 아닌 미래를 평가하는 WURI랭킹에 대한 궁금점을 직접 풀어봤다.
▲평가는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평가는 크게 총장 자체평가(Evaluation), 심사(Judgement), 최종 점검(Final check) 단계로 이뤄진다. 기존에 QS 세계대학평가, THE 세계대학 랭킹 등 정량적 수치를 가지고 평가했다면, WURI랭킹은 총장이 속한 대학을 스스로 평가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자체 대학에서 혁신 사례를 발굴해 이를 주관적으로 평가한다. 그 자체 평가 결과를 두고 심사를 거친다. 세계적으로 대학 연합이 많은데 연합회장은 대학에 대한 객관적 균형감각이 있다. 그들이 자체평가의 적절성을 평가한다. 자체평가와 심사단 평가는 50대 50으로 한다. 그럼에도 이해하기 어렵거나 예측하지 못한 부분은 한국의 실무진이 최종 점검을 한다.
▲평가 지표가 있나.
-크게 혁신의 정도(Innovativeness), 실천가능성(Implementability), 사회적 영향(Impact)을 판단한다. 혁신성은 대상(Innovate for whom)과 방법(Innovate how)을 나눠 평가하며, 13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한다. 대상은 학생·산업·사회가 포함된다. 마지막 스페셜 평가는 매해 바뀌는데, 올해는 생성형 인공지능(AI)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주제였다. 혁신 방법은 리더십·펀딩·인프라와 기술·홍보방식·문화와 가치 등을 평가한다. 각 혁신 사례를 정해진 탬플릿에 입력한다. 이번 평가에는 1072개 대학에서 2916개 사례가 접수됐다.
▲평가가 자의적일 수 있겠다.
-자신의 대학에 1등을 줘도 상관없다. 총장이 자신의 대학에 그 정도 자부심도 없다면 뭘 할 수 있을까. 다만 모든 카테고리에 다 1등을 줄 수 없도록 했다. 이런 부분 때문에 중간 심사단의 역할이 중요하다. WURI랭킹 목적 자체가 순위를 매기기보다 다른 대학으로부터 혁신 사례를 배우라는데 있다.
▲사례를 제출하지 않는 대학의 평가는 어떻게 하나.
-하버드나 MIT는 어떤 평가에도 응하지 않는다. QS 세계대학평가는 소속 직원이 자료를 수집한다. WURI랭킹도 각 대학에서 공개한 자료를 수집하기도 한다. 내부 수집 자료는 해당 대학 총장에게 보내 수정·보완 요청을 하기도 한다. 제대로 수정하지 않으면 평가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 2916개 사례 중 약 800개는 자체 수집한 데이터이고 나머지는 대학에서 직접 제출했다. 대학에서 직접 제출하는 사례는 매년 두 배씩 늘어나는 추세다.
▲2020년 첫 평가 이후 변화는.
-신생 대학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터키 등에서 150개 대학이 적극 참여 의사를 밝혔다. 국가별 참여 대학 수를 10% 수준으로 제한할 정도다. 이번 순위에도 50개 대학 중에 10개 대학이 신생 대학이다. 이제 막 생긴 대학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신생 대학은 혁신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WURI랭킹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혁신이 없다면 진보도 없다. 세계에는 다양한 대학이 있고, 각 대학은 저마다 미션과 비전이 있다. 이전에 대학인증평가위원장 역할을 했을 때 한국 대학평가나 인증제도에 한계를 느꼈다. 이런 제안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로운 평가제도를 도입하게 된 이유다. 우리는 각 대학이 하는 혁신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평가한다. 이제 대학의 총장과 실무자를 평가해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평가와 같은 자극을 통해 혁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보상하겠다는 것이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