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다이너마이트급 이벤트가 일어나는 인공지능(AI) 산업에서 최근 가장 흥미로웠던 사건은 단연 챗GPT와 애플 인텔리전스의 컬래버였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가 AI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군주로 등극하는 동안 AI 트렌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애플 인텔리전스 공개후 잠시나마 다시 MS를 제치고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탈환하며 그 건재함을 묵묵히 보여줬다.
흥미로운 점은 애플이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AI의 수많은 기능들을 수용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혁신을 발표한 첫날은 오히려 주가가 하락했다는 사실이다. AI가 문맥을 파악해 알림을 개인화 하고, 메일에 답변을 제안하며, 사진을 쉽게 편집하는 등 이제는 익히 알고 있는 AI의 수많은 기능과 아이폰의 결합이 '전혀' 새롭지 않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며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혁신의 아이콘인 애플에 혁신을 볼 수 없었다는 비판의 기사와 성토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득했으니 WWDC를 야심차게 준비했던 애플의 당혹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애플은 역대 신고가를 기록하며 사흘 넘게 상승세를 이어가다 5개월 만에 시가총액 1위를 탈환했다. AI를 탑재한 아이폰 편이성이 수요를 자극해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러한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애플의 재부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올해 초 세계가전박람회(CES)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깜짝스타는 '래빗'이라는 작은 개인용 AI디바이스였다. 이 기기는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AI를 탑재해 음성 기반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작은 액정 디스플레이를 통해 음성 인터페이스를 보완하는 수준이지만, 다가올 AI 에이전트(비서)의 미래를 제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또 뒤이어 'AI 핀' '리와인드 펜던트' 같은 비슷한 제품이 봇물처럼 시장에 출시되며, AI 시대에는 새로운 디바이스가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제품들이 '휴대용 AI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디바이스 시장을 개척해 낼 수 있을까? 이미 인류는 스마트폰이라는 결코 싸지 않음에도 다재다능한 슈퍼컴퓨터를 매일 손에 들고 사는 데 익숙해져 있고, 스마트폰은 필요한 기능을 앱과 운용체계(OS) 기능으로 얼마든지 탑재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만약 '휴대용 AI 에이전트'가 우리 삶에 필수적인 아이템으로서 자리잡고 시장을 만들어 낸다면 스마트폰과 휴대용 AI 에이전트 두 개를 들고 다니거나, AI에이전트가 스마트폰의 기능을 가지게 되거나, 스마트폰이 AI 에이전트를 대체하는, 세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애플이 보여준 아이폰의 기능들은 혁신의 놀라움 보다는 기존의 AI 기능을 잘 선별하고 탑재해 아이폰이 더욱 개인화되게 만들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해야 했던 일들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AI 비서'로서의 진화처럼 보인다. 스마트폰이 AI 에이전트의 역할까지 해내는 만능 디바이스, 플랫폼이 되는 것과 '래빗'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디바이스가 스마트폰과 경쟁해 살아남는 것, 어느 것이 더 현실성이 높을까?
만약 휴대폰보다는 값이 싼AI 에이전트가 살아남아 스마트폰의 기능을 점차 가져가게 되는 두 번째 시나리오가 성공한다면,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그 유명한 '와해성 혁신 (disruptive innovation)'의 사례가 하나 더 추가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AI 에이전트로서 스마트폰의 진화를 믿는다면 애플 주식에 배팅해 보는 것이 어떨까.
정상원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서비스혁신위원장·이스트소프트 대표 bizway@est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