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이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독약증권) 띄우기에 나섰다. 주주권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안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경영권 위협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인협회는 26일 금융감독원 후원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 세미나'를 열어 이같은 방안을 논의했다. 그간 주주권익 보호를 중심으로 다뤄졌던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상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기업 경영권 방어 제도를 함께 도입하기 위한 의견수렴 차원이다.
김지평 김앤장 변호사는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에 주목했다. 특히 차등의결권의 경우 복수의결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벤처기업법을 통해 도입된 만큼 거부권주식(황금주)이나 보유 기간에 따라 추가적인 의결권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지난해 7월 주주평등 원칙에 대해 계약을 통해서 주주에게 차등적 권한을 줄 수 있다고 예외를 인정하는 판례가 나왔다”면서 상장기업에도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포이즌필 도입 필요성도 강조했다. 포이즌필은 회사 주주에게 싼 가격으로 대량의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을 발행하되, 회사 경영권에 대한 적대적 인수 시도가 있을 경우 행사 조건을 충족하도록 한 증권이다. 김 변호사는 “제도가 오남용될 것이 두려워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보다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을 무조건 외면하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밝혔다.
기업 측 주장에 대한 반발도 거셌다. 강성부 KCGI자산운용 대표는 “회사돈으로 사는 자사주는 왜 대주주 경영권 방어에 써야 하는지 애당초 접근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포이즌필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기원이 아니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 받기 위한 것인데 자꾸 곡해되고 있다”며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보다 상속세 등 다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부의 밸류업 정책 추진 과정에서 주주권익 확보와 경영권 방어라는 화두가 첨예하게 부딪히면서 향후 상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도 진통이 잇따를 전망이다. 지난 25일에도 앞서 한국경제인협회 등 8개 경제단체가 국회에 전달한 '이사 충실의무 확대 반대' 건의에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등은 거세게 반발하는 성명을 내놓으며 논의가 격화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주주의 권리행사가 보호·촉진되고, 모든 주주들이 합당한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기업지배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이번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앞으로 학계, 경제계, 시장전문가, 유관기관 등과 긴밀히 논의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