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3조원 가까이 증액하려는 것은 과학기술계 반발을 감안한 결과다. 과기계는 '일반 R&D 예산' 등을 포함한 전체 R&D 예산 규모의 최종 확정까지 실질적인 확대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3대 게임체인저 집중투자 등 '역대 최대'
내년 주요 R&D 예산 규모는 올해 21조9000억원 대비 약 13% 증가했다. 지난해 24조7000억원보다 늘어나면서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이번에 예산이 결정된 주요 R&D에서 주로 증액이 이뤄진 부분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 3대 게임체인저 분야와 고위험-고보상형 R&D인 혁신·도전형 R&D 등이다.
3대 게임체인저 분야는 올해 2조7000억원 대비 24.2%가 확대됐다. 혁신·도전형 R&D에는 약 1조원이 투입된다.
그동안 정부가 강조했던 선도형 R&D 전환을 위한 글로벌 R&D, 기초연구, 인재 확보 분야의 예산 또한 큰 폭으로 늘었다.
글로벌 R&D의 경우 지난해 5000억원, 올해 1조8000억원의 예산 규모가 내년 2조1000억원으로 13.3% 늘었다.
올해 예산 삭감 여파로 과제 축소 등이 이뤄진 기초연구는 역대 최대 규모인 2조9400억원을 투입한다. 젊은연구자 대상 투자 규모 또한 올해 대비 1300억원이 늘며, 비전임 교원 지원 트랙, 신진연구자의 개척돌파형 연구, 우수 연구 성과자 후속연구 지원 트랙 등이 신설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는 23.7% 증가한 8100억원을 투자한다. 또 이차전지에 28.9% 증가한 1800억원을, 차세대통신에 19.1% 증가한 4800억원을 투입한다. 기존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초격차, 신격차 확보에 대한 투자를 늘려 차세대 성장엔진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젊은연구자·출연연 '숨통' 트일까
R&D 예산 삭감 타격을 입었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전체 예산 또한 늘어난다. 출연연 예산은 인건비와 경상비를 포함한 기관 운영비와 R&D 과제를 수행하는 주요 사업비로 나뉘는데 이들 모두를 합친 전체 예산 규모는 11.8% 증가한 2조1000억원이 책정됐다. 실제 R&D 수행을 위한 주요 사업비만의 증가 규모는 21.8%다.
올해 출범한 우주항공청의 예산도 내년 8645억원을 편성하면서 우주 분야 전체 예산은 역대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부터 기획됐으나 반영되지 못했던 R&D 사업을 신규로 편성, 우주 분야 R&D 예산으로만 약 2000억원이 증액된 상태다.
박상욱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은 이날 내년 R&D 예산 배분·조정 브리핑을 통해 내년도 R&D 총 규모가 역대 최대수준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박 수석은 “내년 정부예산 총 증가율이 4% 선으로 예측되는 것 감안하면 재정여력이 없는 가운데 최선을 다해 큰 폭으로 증액이 이뤄졌다”며 “올해 예산의 구조조정 성과 토대 위에서 증액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과기계는 기초연구와 출연연 예산 확대 등이 이뤄진 만큼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지켜볼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제시한 24조8000억원 중 3000억원은 양자 등 예타 결과에 따라 명확한 규모를 확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주요 R&D 총액은 지난해와 올해 이상의 규모지만, 내년도 총 예산안에서 R&D 예산이 차지하는 실제 비율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과학 분야 국정과제로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에서 유지'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전체 R&D 예산은 건전 재정기조를 근거로 예산 총지출 대비 약 3.9%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근 10년간 정부 예산 총지출 대비 R&D 투자비율 평균인 4.83%에도 미치지 못했던 수준이다.
과기계 한 관계자는 “현재 정부 총지출 규모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전체 R&D 예산의 차지 비율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분야별 R&D 투자 규모 확대는 물론 5% 투자 기조 유지 여부가 R&D 예산 회복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정부의 과학중심 국정운영 철학이 지켜질지는 주시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