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교수들 “4일부터 진료축소”…뿔 난 환자단체, 역대 최대 집회 예고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이 당초 4일부터 예고했던 '집단 휴진' 대신 '진료 축소'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강도 높은 진료 재조정으로 평시 대비 수술이 5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의 진료거부에 환자 단체는 처음으로 거리 집회를 예고하는 등 의정 갈등 여파가 사회 곳곳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자료: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자료: 연합뉴스)

서울아산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울산대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3일 입장문을 내고 “의료붕괴가 시작됨에 따라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은 4일부터 지금보다 더 선별적이고 강도 높은 진료 축소와 재조정을 통해 중증·응급·희귀난치성 질환을 집중적으로 진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정부가 초래한 국가 비상 상황에서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은 중증·응급 질환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강도 높은 근로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의료 붕괴의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암 등록본부에서 발표한 2021년 암 발생자 수는 27만여 명이고, 이 중 13%가 아산병원에서 치료받았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가장 사망률이 높은 폐암의 경우 2021년 3200여명이 서울아산병원에서 폐암등록 보고를 했지만, 올해 6개월간 1100여명을 치료하는 데 그쳤다”며 “이대로 가면 폐암의 회피 가능 사망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고, 다른 중증 질환들도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비대위는 “한국 의료가 정상화될 때까지 경증질환자는 1·2차 병원으로 적극적으로 회송하고 단순 추적관찰 환자와 지역의료가 담당할 수 있는 환자의 진료는 불가피하게 축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자체 집계 결과 4일 주요 수술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49% 줄고, 전주보다 29%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래진료는 작년 동기간보다 30.5%, 전주보다 17.2% 축소되고, 신규환자 진료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42.1%, 전주보다 16.5% 줄어든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중증아토피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환자단체 회원들이 지난 달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료계 집단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자료: 연합뉴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중증아토피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환자단체 회원들이 지난 달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료계 집단휴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자료: 연합뉴스)

비대위는 “정부의 폭력적인 의료정책 추진으로 촉발된 의료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불가피한 선택임을 이해해달라”며 “이미 진단된 질환의 2차 소견이나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는 질환자는 가급적 외래진료 예약을 하지 말아달라”고 환자들에게 당부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암 환자와 중증·응급질환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정상적인 의료상황과 비교한 통계를 발표하고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희귀난치성 질환에 집중할 수 있게 강도 높은 정책을 바로 실시해달라”며 “상급종합병원 중복진료를 금지하고 이미 시작된 지방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발표한 정책과 예산을 즉시 투입해달라”고 촉구했다.

또 “정부는 전공의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달라”며 “정부가 변하지 않는다면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상위를 차지하던 모든 지표가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병원 의사들의 연이은 진료 거부에 환자단체들은 불안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실제 서울대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을 철회했지만 연세대의대와 고려대의대 등 수도권 대형병원 의사들은 무기한 휴진에 돌입했거나 돌입 예정이다.

이에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92개 환자단체는 오는 4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를 연다. 이들 단체는 경찰에 1천명이 참여할 예정이라고 집회신고를 했는데, 이는 역대 가장 큰 규모다.

환자단체들은 “의료공백 정상화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협의는커녕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도구삼아 서로를 비난하기만 하는 갈등 양상에 더는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철 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