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국회 회기 만료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던 전자주주총회 도입이 우선 재추진된다. 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국회는 물론 재계 안팎으로 갈등이 첨예해지는 가운데 우선 시급한 과제부터 순차로 해결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국회에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정부안으로 발의했다. 법무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에 앞서 지난 회기에 제출했던 법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안에는 전자주총과 함께 반대주주 주식 매수 청구권 도입 등 법무부가 앞서 예고한 조항도 함께 담겼다. 반대주주 주식 매수 청구권은 핵심 사업부의 물적분할 후 상장에 따른 모회사 주가 하락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반 소액주주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 여타 상법 개정안과 달리 전자주총에 대해서는 일반주주와 재계가 모두 도입을 찬성하고 있는 만큼 이견이 적은 사안부터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실제 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등 상장기업은 물론 여타 지배구조 관련 단체들도 전자주총 도입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찬성하는 분위기다.
다만 문제는 전자주총 관련 법안이 단 한 차례도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국회 회기 막바지에야 법안이 발의되면서 이 법안은 상임위원회 논의는 물론 전문위원실의 검토조차 받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재계에서는 향후 국회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져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실제 현재 국회에는 정부안 외에도 총 10건의 의원발의 상법 개정안이 대기하고 있다. 쟁점이 되고 있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조항 외에도 정부안에서 규정한 조항과 다른 내용을 규정한 조항을 담은 의원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여야의 첨예한 갈등 국면속 유사 법안이 연이어 발의되고 있는 만큼 법안 병합 과정 등에서 논의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지난 회기 국회를 통과한 유일한 정부 상법 개정안은 총 5개 법안을 병합해 최종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 과정에서 당초 정부안에 비해 소수주주권을 더욱 강화하는 내용이 추가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전자주총 도입의 경우 여야는 물론 재계와 소액주주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이지만 법안에 함께 담긴 주식매수청구권 관련 조항의 경우 열람등사청구권 보장 등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면서 “병합 심사 과정까지 원안 통과를 확신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재계가 법무부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다. 현재 법무부는 추가적인 상법 개정안에 대한 명확한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역동경제 로드맵에도 이사 충실의무 강화 관련 내용은 장기 과제로 넘겨뒀다. 공론화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상장기업 관계자는 “이사 충실의무 강화 등 쟁점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공론화를 추가로 거치되 전자주총과 같이 모두가 동의하고 도입이 시급한 사안은 분리해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면서 “이미 시장에서는 도입 준비를 모두 마친 만큼 내년 정기주총부터는 전자주총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류근일 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