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이온배터리 화재땐 열폭주 초기 대응 어려워
비전도성 제품 비싼 가격에 꺼려…설치규정 없어
정부, 장비 구축·진화 매뉴얼 보완…신속 대처를
화성 배터리공장 화재사고로 전기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지만 다수 다중이용 시설에서 전기화재(C급)용 소화기를 제대로 비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화재시 소화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감전·질식 등의 2차 사고 발생이 우려된다.
8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복합쇼핑몰,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전기차 충전기 시설에 전기화재용으로 부적합한 소화기가 상당수 비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용도가 다른 소화기를 설치했거나 형식승인 및 검사필증(KC마크)이 없는 제품인 사례가 다수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옥상 전기차 충전소에는 주방화재(K급) 소화기와 분말소화기가 비치됐다. 부천아트벙커 전기차 중전소에도 금속화재(D급) 소화기가 설치돼 있다.
전기차 리튬이온배터리 화재는 '열 폭주'라고 불릴 정도로 빠른 발화와 가스 생성, 연쇄반응이 일어나 진화가 어렵고 재발화 가능성도 높다. 전기화재 진화에 부적합한 소화기를 사용하면 초기 대응이 어렵다.
서울 여의도 아크로타워스퀘어와 송파구청 전기차 충전소에는 형식승인을 받지 않은 소화기가 있다. 소화기는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품의 형식과 성능 등에 대한 형식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이 KC인증마크를 부여한다. 이를 받지 않은 소화기는 국내에서 생산·판매할 수 없다.
2년 전 해외 구매대행으로 형식승인을 받지 않은 소화기가 대량 판매되자 소비자원과 소방청이 안전주의보를 발령했지만, 전기차 충전기 화재용 소화기 시장에서도 나쁜 관행이 이어지는 셈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국내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30만5309대에 달한다. 2020년(6만4188대)과 비교해 375%가량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기차 충전사업자도 180개사에서 507개사로 크게 늘었다. 전기차 충전기 확대 추세와 달리 화재 발생시 초기대응을 위해 가장 중요한 비상용 소화기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동안 다수 시설에 부적합 소화기를 비치해 온 가장 큰 이유는 전기화재 적응성을 갖춘 비전도성 제품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리튬배터리 열폭주 현상의 경우 액체 형태의 소화약제 직접 접촉을 통한 냉각효과로 진화를 하면서 감전의 위험도 없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5월에야 KFI 형식승인을 받은 제품이 처음 나왔다. 승인 제품이 출시된 지 1년여밖에 되지 않았고, 가격도 비싸다 보니 부적합 제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소 소화기 비치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화성 화재 사고 이후 전문가들도 진화 방법과 어떤 소화기를 써야 하는지를 두고 각양각색의 주장을 하는 상황이다. 소방 업계는 전기화재 적응성을 갖춘 비전도 소화기로 초기 대응하고, 이후 현장에 도착하는 소방대원이 최종 진화에 나서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보고 있다.
최명기 한국기술사회 안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화성 화재 사고 이후 전기화재 관련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 화재를 금속화재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분명 전기화재이며 비전도성 액체를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빨리 관련 기준을 보완하고 시설 관리사무소도 전기화재 소화기, 침수조 등 장비와 함께 유사시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