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개발 과정에서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량이나 오작동 문제를 맞닥뜨린 기업이 우리를 찾아와 해결 실마리를 찾을 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한국전기연구원(KERI)의 핵심 기능은 단연 전기 연구지만 지역사회와 긴밀히 소통하며 중소기업 기술개발 역량과 기술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는 기업지원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오랜 시간 축적된 연구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성과창출을 끌어내고 있는데 최근에는 KERI 내에서도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가 단연 돋보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뮬레이션이란 현실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물리 현상을 소프트웨어(SW)로 모델링하고 수치 해석을 통해 각종 문제점을 도출하는 과정을 말한다. KERI 공정혁신 시뮬레이션센터는 2020년 5월 처음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약 4년간 200건 이상의 기업지원 성과를 거뒀다.
센터를 이끌고 있는 백명기 해석기술지원실 책임연구원은 “시뮬레이션 자체가 새로운 기술은 아니지만 분석 SW 가격만 억대에 달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시스템을 갖췄다 해도 수치해석은 물리방정식을 만들고 푸는 것과 같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중요한데 풍부한 경험을 갖춘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점도 장벽을 높이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부의 제조업 디지털 전환사업 공모에 전국 1호로 선정돼 구축된 센터는 설립 첫 해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한 전자석 제조 기업은 설계대로 제품을 완성했는데 출력 성능이 목표치에 못 미쳐 몇 달째 끙끙대다가 센터를 찾았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장 문제를 눈으로 확인하고 설계를 수정해 원하는 성능을 구현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자동차 부품 제조 기업은 다양한 부품 소재와 열처리 온도 조건에 따른 강도 변화 등을 센터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하고 최적의 조건을 도출했다. 그 결과 기존 6개월 이상 걸리던 제품 개발을 단 2개월 만에 완료하고 성공적인 수주 실적을 냈다. 비용절감 효과도 컸다.
이러한 성과가 그냥 이뤄지진 않았다. “진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너무 바빠서 도움을 구하러 찾아올 시간도 없다. 결국 우리가 직접 기업들을 리스트업하고 지원 가능한 분야와 규모 등을 나눠 발로 뛰고 현장 어려움을 들으면서 체감도 높은 성공 사례를 쌓을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나아가 센터는 지역 내 산학연 협력을 통해 시뮬레이션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해 매년 100명 이상 해석기술 전문인력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 지역 제조혁신에 특화된 인재를 배출하고 고용률 향상에도 이바지할 전망이다.
백 책임연구원은 “기업지원이 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지만 우리도 KERI 소속 연구원으로서 시뮬레이션 기술을 디지털 트윈으로 확장하는 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면서 “현실을 똑같이 구현한 가상세계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 결과를 보여주는 단방향 디지털 트윈에 그치지 않고 결과를 바탕으로 현실세계에 자동으로 해결책을 적용하는 진정한 의미의 양방향 디지털 트윈을 구현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꼭 시뮬레이션과 수치해석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 경우 도움이 될 만한 다른 기관과 연결해줄 수 있으니 애로 해결을 위한 하나의 기업용 플랫폼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히 찾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창원=노동균기자 defros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