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주목할 발표를 했다. 최근 실적설명회에서 “파운드리 2.0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파운드리 2.0은 반도체 업계에서 생소한 표현이었지만 요지는 이랬다. 웨이퍼에 회로를 구현하는 전공정을 넘어, 반도체를 포장(패키징)하고 검사(테스트)하는 후공정까지 TSMC가 사업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C.C 웨이 TSMC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기준 세계 파운드리 산업 규모는 1150억 달러(약 160조원)지만, 여기에 패키지·테스트를 더할 때 2500억 달러(약 347조원)에 이른다”며 “새로운 정의(파운드리 2.0)에 따른 TSMC 시장 점유율은 28%이나,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TSMC는 명실상부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트포스에 따르면 1분기 시장점유율은 61.7%다. 2위 삼성전자(11.0%)와 큰 격차를 벌리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런 TSMC가 OSAT로 불리는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 시장을 공략해 입지를 확대하겠다고 한 것이다.
후공정 시장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개별 반도체의 미세회로 선폭을 줄여 전력·성능·면적(PPA)을 개선하는 게 전공정이라면, 후공정은 여러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연결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기술 난도 증가로 전공정에서의 반도체 성능 개선 속도가 늦어지면서 후공정 기술이 반도체 한계 돌파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TSMC는 과거에도 패키징 기술로 두각을 나타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생산하던 애플 칩(AP)을 가져간 것도,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독식할 수 있던 배경에는 항상 TSMC의 패키징 기술이 있었다. 가뜩이나 매서운 TSMC가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것은 허언이 아닌, 한국 반도체에는 또 다른 장벽을 예고한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걱정은 한국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반도체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예산을 투입, 선도 기술 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대만과 패키징 기술 격차가 10년이라는 평가를 차치해도 세계 10대 패키징 회사에 한국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단순 우려를 넘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패키징 생태계 핵심인 파운드리와 패키지 기업간 기술 개발 협업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협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꾸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고, 변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 반도체가 국가대항전이 된 지금 패키징에서 뭉치지 않으면 한국 반도체는 대만과 미국, 심지어 일본에도 밀려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