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 〈182〉사바나와 정원, 그리고 서울 정원도시

사바나, 신생 인류가 두 발로 밀림에서 나와 처음 정착한 곳이다. 사바나 중에서도 사방을 조망하며 몸을 은폐할 수 있는 여러 키의 나무들이 있고 앞쪽으로 탁 트인 초지대와 물이 풍부해서 멀리 이동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수렵 생활을 할 수 있는 곳, 즉 생존과 주거, 안식이 가능한 이런 곳이 호모사피엔스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경제적인 수단으로 사고팔고 흥정으로 해결하겠지만, 초기 호모사피엔스들은 이런 곳을 차지하기 위해 집단싸움을 불사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호모사피엔스들에게 가장 이상적으로 안전한 주거지인 사바나 그곳은 바로 현대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원의 모습과 흡사하다. 사바나의 기억은 수십만년에 걸쳐 인간 DNA에 암호화되어 여전히 도시민들에게 정원을 꿈꾸게 하고 있다. 또 다른 생존을 위해서.

생활 수준과 달리, 사람의 복지나 행복 정도를 말하는 삶의 질(quality of life)은 건강, 주거, 식사와 같은 물질적인 측면과 스트레스, 자유, 즐거움과 같은 정신적인 측면의 욕구 충족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삶의 질을 직접 측정하고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대신 인간집단으로 포괄해서 건강, 거주와 식사, 자유 권리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들을 활용하면 구성원들의 삶의 질 수준을 예측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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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59위. 전 세계 140개 수도를 대상으로 삶의 질의 요소지표에 기반한 '살기 좋은 곳' 평가에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순위다(Global liveability index 2023, EIU). 경제적으로 반세기 만에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우리로선 인정하기 싫은 수치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볼 일이다.

인간의 욕구를 단계별로 살펴보면, 기초적으로는 건강, 다음으로 주거와 식사 등 물리적인 요건, 궁극적으로는 문화와 여가, 사회 참여 등 정식적인 요건으로 복지나 행복의 정도가 삶의 질에 대한 궁극적인 만족 목표가 된다.

2023년 서울시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정원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시 조직도 푸른도시국을 푸른도시여가국으로, 2024년에는 정원도시국으로 변경했다. 시민 참여와 동행 정원도시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추진한다고 발표했으며, 2026년까지 일상 속 매력 정원 1000개소를 만든다.

인간이 만든 거대 도시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호모사피엔스의 사바나에 대한 오랜 기억 본능, 즉 자연과의 교감이 일상에서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창조물 도시에서 자연과의 교감을 쌓는 곳, 바로 정원이다.

교감이란 양방향성이다. 일방적인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다. 서울시가 도시녹화 비전을 여가와 참여가 동반되는 정원형으로 전환한 것은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하고 절묘하다. 서울시는 이미 2013년에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그린 인프라를 시민의 '참여'와 '나눔'이 가능한 곳으로 여가와 문화의 장으로 밑그림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당시 서울시와 협업을 통해 대학(서울시립대·서울대·삼육대)에서 서울시민정원사 양성과정을 개설했고,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시민들에게 인기가 대단하다. 벌써 1500여명의 서울시민정원사가 배출되어 서울 녹지공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육생들의 면면을 보면, 20대에서 60대까지 학생, 회사원, 가정주부, 사업가, 의사, 변호사, 교수, 기자 등 정말 다양한 계층의 일반 시민들이다. 참여동기도 진로, 여가활동, 봉사와 나눔, 사회 참여, 은퇴 후 삶 등 다양하다. 하나 같이 식물을 이해하고 번식하고 가꾸는 활동이 재미있고 즐거워한다. 정원활동 봉사와 사회 참여를 은퇴 후 삶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서울을 보다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원도시 정책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과감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원 그 자체보다는 정원활동 활성화에 중점을 두어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시민과 동행하는 정원도시 정책을 기대해 본다.

김완순 서울시립대 교수 wskim2@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