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109년 난제' 풀었다…미시·거시세계 각운동량 전달 메커니즘 밝혀

이종석 GIST 교수팀, 인공구조물 ‘카이랄 열포논’ 세계 최초 직접 관측
“포논이 자기 수송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
자성 물질 내에서 미시세계 (스핀)-거시세계 (물질 회전)로의 각운동량 전달 과정.
자성 물질 내에서 미시세계 (스핀)-거시세계 (물질 회전)로의 각운동량 전달 과정.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이종석 물리·광과학과 교수팀이 자성-비자성 초격자 인공 구조물에서 각운동량을 지니고 있는 카이랄 열포논의 생성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24일 밝혔다.

초격자는 두 종류 이상의 물질이 주기적인 층으로 이뤄진 구조로, 보통 각 층 두께는 수 나노미터(㎚) 정도다. 카이랄 열포논은 격자가 집단적으로 회전하고 움직이며 물질 속에서 전파해 나가는 포논(응집물질에서 격자진동이 양자화된 상태)이다. 서로 거울상이지만 겹치지 않는 성질인 카이랄성을 지닌다. 열통계를 따르는 카이랄 포논을 카이랄 열포논이라고 한다.

각운동량 보존 법칙은 에너지 보존 법칙·운동량 보존 법칙과 함께 물리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세 가지 법칙 가운데 하나다. 고전역학의 거시세계와 양자역학의 미시세계에 모두 적용한다.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회전할 때 몸을 움츠리는 동시에 팔을 오므리는 행동은 회전 관성을 줄여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며 헬리콥터에서 꼬리 날개를 활용해 균형을 잡는 것은 실생활에서 각운동량 보존 법칙의 대표적인 사례다.

191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반더르 요하네스 더 하스는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로도 각운동량이 보존된다는 것을 아인슈타인-더 하스 효과를 통해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어떠한 원리로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로 각운동량을 전달하는 지에 대해서는 초고속 측정 기술의 한계로 1915년 이후 100년이 넘도록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스핀-격자 상호작용을 통해 미시세계 속 스핀에서 격자들의 집단 움직임인 포논으로 각운동량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2022년 독일 콘스탄츠대학교 연구팀에 의해 실험적으로 밝혀졌다. 이때 각운동량을 전달받은 포논을 카이랄 포논이라고 부르며, 이는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이어주는 핵심적인 각운동량 전달 매개체이다.

이종석 GIST 교수(오른쪽)와 최인혁 박사과정생.
이종석 GIST 교수(오른쪽)와 최인혁 박사과정생.

그럼에도 카이랄 포논의 생성(수 피코초(1조분의 1초))과 아인슈타인-더 하스 효과(수 밀리초(1000분의 1초)) 사이에 방대한 시간적 차이가 존재하며, 그 사이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는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이종석 교수팀은 자성 산화물인 루테륨산 스트론튬(SrRuO3)과 비자성 산화물인 타이타늄산 스트론튬(SrTiO3)을 결합시킨 초격자 형태의 인공 복합 구조물을 만들었고, 보스-아인슈타인 통계를 따르는 카이랄 열포논의 생성을 세계 최초로 직접 관측해 1조분의 1초와 1000분의 1초 사이의 각운동량 전달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광여기를 통해 SrRuO3에서 초고속 자기소거를 유도하고, 카이랄 열포논을 생성했다. 이렇게 생성한 카이랄 열포논은 인접한 SrTiO3 층으로 전달되고 동적 다강성 효과로 큰 자기 모멘트를 형성하게 된다.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레이저를 이용한 시분해 자기광학 커 효과 측정으로 루테륨산 스트론튬과 타이타늄산 스트론튬 초격자 내의 카이랄 열포논이 생성하는 자기 모멘트를 실시간으로 관측했다. 카이랄 포논이 생성된 직후 물질의 회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카이랄 열포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밝혀냈다.

이종석 교수는 “이번 연구는 포논이 자기 수송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결과로서 스핀 공학과 포논 공학의 접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한편, 향후 자기 및 열 기능성이 결합한 다기능성 나노 소자 개발에 대한 중요한 디딤돌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지도하고 최인혁 박사과정생이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사업, 신진연구자사업, 나노 및 소재 기술개발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기초 및 응용 연구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온라인에 최근 게재됐다.

광주=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