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다변화와 고도화로 기술이 중요해진 시대가 도래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퍼스트무버(First Mover) 보다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의 지위에 머무르고 있다. 현 상황을 두고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이 기술력으로 무장해 기술 패권을 차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단법인 도전과나눔은 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에서 '제66회 도전과나눔 기업가정신 포럼'을 개최했다. 강연자들은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한국이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돼야 한다”며 “기술력 확대는 물론 사업화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금룡 도전과나눔 이사장은 “현재 대졸자 400만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20대의 80%가 부모에게 얹혀 사는 상황”이라며 “그동안 노동력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강국에서 이제 소프트웨어(SW)와 하이테크로 옮겨가지 않으면 400만명에 달하는 2030 대졸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이사장은 “2027년까지 엔비디아 매출을 3000억 달러로 예상하는데 핵심은 바로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안현실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상임대표(서울대 객원교수)는 '대한민국 기술 강국의 조건'을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그는 강대국에 끼인 한국의 지정학적 운명 때문에 기술강국은 '가능성'이 아닌 '정답'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R&D 삭감을 비판했다. 안 상임대표는 “R&D 분야의 일괄 삭감으로 전 분야에 쇼크가 왔고, 예산을 복구한다고 해도 이 트라우마는 20~30년 갈 것”이라며 “경제 안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다”고 직격했다.
안 상임대표는 “한국은 R&D 투자 세계 5위, GDP 13위, 국방비 11위 등 객관적 지표로 봤을 때 기술강국이라 할 수 있지만 기술 패권의 부재로 불안한 상황”이라며 “기술 강국이라면 전략적 자율성과 전략적 불가결성을 가져야 하지만 한국은 둘 다 부족한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기술 패권을 가질 수 있는 대안으로 안 상임대표는 인공지능(AI)을 지목했다. 아직 남아있는 제조업 AI 분야에서 한국이 제3의 축이 돼 기술 패권 국가로 발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설명이다. 안 상임대표는 “한국이 기술력을 갖췄을 때 전략적 존재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한국이 AI 베이스 캠프를 만들면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기술이 패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의 상용화가 핵심이다.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는 '기술사업화, 왜 어려운가'를 주제로 한국 기술사업화의 현실을 분석했다. 이 대표이사에 따르면 한국 기술사업화의 정량적 지표는 한 해 정부 R&D 예산 30조7000억원, 액수로 세계 5위, 1인당 R&D 투자 비중은 1위를 차지한다. 정부 R&D 기술적 성공률은 90%에 달하지만, 사업화 성공률은 20%에 불과하다. 일본(54%), 미국(69%), 영국(70%) 등 선진국과 비교해 기술사업화 성공률의 간극이 컸다. 양적 투자는 잘됐지만 질적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사업화 부진 이유로 창업가의 메타인지 부족, 전략의 부재, 규제 환경 등 3가지를 꼽았다. 특히 지금 같은 규제 환경 속에서 기술사업화는 힘들다고 봤다.
그는 “우버, 에어비앤비 등 국내에서 규제로 들어오지 못하는 글로벌 기업이 데이터를 쌓아가고, 전 세계를 상대로 서비스하는 상황에서 규제가 풀어진다면 그때는 단번에 점령당할 것”이라며 “한국도 퍼스트무버가 탄생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