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절연가스 개발은 지난 수십년간 해외 선진업체도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포기한 도전적 과제였지만 국책 연구기관으로서의 사명감으로 우리가 결국 해냈습니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육불화황(SF6)을 대체할 세계 최고 수준 친환경 절연가스 'K6' 개발에 참여한 장현재 한국전기연구원(KERI) 친환경전력기기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지난 5년여간 연구 기간을 돌아보면 단 하나도 쉽게 넘어간 과정이 없었다며 고생담을 풀어놓으면서도 기대감을 숨기지 못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전기와 달리 고압 전기는 공기 중 수분을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어 잘 차단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고전력 장비에는 수분을 완전히 뺀 건조공기를 쓰고 나아가 수만볼트를 넘나드는 송·배전급 시설에서는 더 절연 성능이 뛰어난 SF6를 사용한다. 문제는 지난 50년간 써온 이 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이산화탄소의 2만3500배에 달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장 연구원은 “선진국에서 일제히 SF6 대체가스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절연 성능이 떨어지거나 심지어 유전자 변형물질이 나오는 등의 문제로 모두 폐기됐다”면서 “친환경 요건 외에도 충족해야 할 필요조건이 너무 많아 전 세계 연구자들도 SF6 대체가스는 신약 개발 수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설명했다.
KERI와 한국화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가 함께 뛰어들어 개발에 성공한 K6 가스는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이산화탄소보다 낮고 심각한 독성 성분도 없다. 끓는점도 -26℃로 낮아 안정적이다. KERI는 K6를 14만5000㎸ 송전급 차단기에 적용하고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 규격에 따른 차단 성능 시험을 통과했다.
장 연구원은 “수백 종 가스 후보군에 대한 특성 정밀분석 후 2차 후보군을 정하고 하나하나 검증했는데 기체 친환경성이나 독성, 인화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관이 국내에 없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난한 과정이었다”면서 “절연가스 적용이 가장 힘든 기기가 전력망 최후의 보루인 차단기인데 K6로 가장 어려운 차단기 구간 테스트를 통과했을 때 9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K6가 성공적으로 상용화되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파급력이 어마어마할 전망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글로벌 전력기기 산업에서 수출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만큼 환경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경제·산업적으로도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장 연구원은 “K6 상용화를 위해서는 실제 전력회사나 전력기기 업체에서의 설계 기준이나 운영 매뉴얼, 유지보수 가이드 등 제반기술도 필요해 후속 연구 중”이라며 “이번 연구 과정에서 여러 문제에 부딪치면서 연구에 필요한 기본적인 필요조건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졸업 후 기업에 입사했을 수도 있고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출연연에 들어와서 개인적 성공보다는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연구를 한다는 사명감이 들 때마다 보람이 크다”면서 “한 사람의 전기 전공 과학자로서 나만큼 좋은 환경이 없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연구에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창원=노동균기자 defrost@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