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망 확충'은 국가적 난제다. 지역의 반발로 송전망 건설이 장기간 지연되는 상황이 일상화됐다.
실제, 주요 송전망 프로젝트는 하나같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500kV 동해안-신가평 HVDC는 당초 2019년 12월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내년 6월께나 준공될 것으로 보인다.
345kV 북당진-신탕정 구간은 준공 시기가 2012년 6월에서 올해 말로 늦춰졌다. 지연 기간이 12년6개월에 이른다. 345kV 당진화력-신송산 구간도 예정보다 7년 6개월 늦은 2028년 연말이 돼야 전력망에 힘을 보탠다.
한국전력이 추산한 송전망 공사 기간은 345kV 기준 평균 13년인데 규모가 커질수록 이보다 몇 배는 더 걸린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전력수요 증가에 따라 신규 발전소가 지어져야 하는데 적기에 송전 설비를 갖추지 못하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손실을 볼 수 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 전력수요는 2023년 대비 30.6GW 늘어난 128.9GW로 전망됐다. 전기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증설로 인해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른 목표 설비는 157.8GW다. 제10차 전기본에서 목표한 2036년 기준 143.9GW 대비 10GW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원자력, 액화천연가스(LNG), 수소 등 다양한 발전원이 전력 시장에 들어오도록 하는 전원 계획을 수립했다.
현 상황을 보면 송전망이 이에 맞춰 적기에 준공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발전설비를 늘려도 적재적소에 전력을 공급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 해결은 만만치 않다. 송전망 건설 지연의 1차 원인은 해당 지역의 낮은 수용성이다. 송전망 건설 계획이 알려지면 환경 단체와 시군구 지역 주민의 민원이 쏟아지고 갈등이 발생한다. 송전선 위치 선정에만 수년이 소요된다. 현재 한전 혼자 민원을 중재하는 데 사실상 역부족이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범부처 전력망위원회를 신설, 입지·갈등 조정 등을 수행하고 수요 맞춤형 보상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지난 국회에서 폐기됐다.
막대한 재원도 걸림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전력망 투자 비용은 기존 10차전력수급기본계획과 연계해 수립한 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 기준, 56조5000억원에 이른다. 최근 초안이 나온 제11차 전기본과 연계한 11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상 투자 비용은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여건상 한전의 투자 여력이 충분치 않다. 전기 요금 현실화가 늦어지는 사이 재정이 극도로 악화한 탓이다.
상황을 고려하면 전력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송전망 관리 주체인 한전이 오롯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은 이미 지났다.
송전망 확충 관련 지원 확대, 갈등 조정과 관련해선 국회의 역할이 절실하다. 전기요금 조정은 이미 대통령실과 여당의 권한이 된 지 오래인 만큼 당정이 전향적 자세로 돌아서야만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다. 송전 건설에 민간이 참여하는 등의 전에 없던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본다면 송전망 확충 문제는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임이 분명하다. 나아가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행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시간은 이미 부족하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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