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강타한 기술패권 경쟁은 '맨파워', 즉 유능한 이공계 석·박사 인재 확보 전쟁으로도 전선을 넓히고 있다. 인재 확보가 곧 국가경쟁력을 가르는 중요 요건이 된 것이다.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가가 운영하는 연구기관에 교육 기능을 부여해 현장 중심 우수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가 이목을 끄는 이유다. UST가 배출한 인력은 이미 수많은 연구, 교육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심지어 세계로도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UST의 인력 배출 성과들을 돌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편집자주〉
지난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UST는 2006년 최초 졸업생을 배출한 후 올해 전기까지 박사 1527명, 석사 2117명 총 3644명 이공계 석·박사 과학기술 인재를 배출했다.
학부 없이 대학원 과정만 있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UST 커리큘럼을 통해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이끄는 차세대 과학자로 성장하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 연구성과를 창출하며 졸업을 맞고 있다.
UST에서 한 해 배출하는 이공계 석·박사 수는 약 200명 선. 2022년에는 이공계 박사 기준 170명을 배출, 국내 10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한 해 배출 석·박사 전체 약 2만6000명에 비하면 적지만, 질은 매우 높다. 일반 대학과 전혀 다른 교육과 차별화된 경험을 바탕으로 1% 이공계 인재가 배출되고 있다.
UST의 중장기 국책 연구과제와 재학생 본인 연구 테마를 일치시킴으로써, 학위과정 동안 해당 분야 전문가로 성장할 기회를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첨단 연구 인프라, 주도적인 연구수행 기회가 주어지는 UST 환경에서 5~7년 동안 강도 높은 연구 경험 중심 학위과정을 거친 결과,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로 성장하게 된다.
실제로 매 학기 박사 졸업생의 약 40% 가까운 이들은 저널인용보고서(JCR) 상위 10% 저널에 1저자 논문을 게재하는 등 질적으로 매우 뛰어난 성취를 이룬 후 졸업하고 있다.
특히 2021년의 경우 졸업자 157명 가운데 JCR 10% 저널 1저자 논문 게재자는 62명으로 39.5%에 달한다. 수월성 차원에서 아주 높은 수준을 보이는 것이다.
이에 힘입어 2022년 공식 취업률은 92.9%, 최근 3년(2021~2023년) 평균 취업률은 90.5%에 달한다. 취업 현장에서도 UST 졸업생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졸업자들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학계, 산업계, 정부·공공기관 등에서 신진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탁월한 연구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이 곧 모교인 UST 특성답게 2022년 후기 기준, 내국인 졸업생 총 2267명 중 약 220명(약 10%)이 28개 출연연에 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있다. 최근에는 출연연 주요 보직자(국책연구과제 책임자급)도 다수 등장하는 상황이다. 각 기관 핵심 인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변정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R&BD분석연구팀장 △한정열 한국천문연구원 전 천문우주기술센터장 △정태현 천문연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그룹장 △이강현 극지연구소 남극내륙연구사업단장 △이주한 극지연미래기술개발부장 △고은진 국방과학연구소(ADD) 탐색기기술부 팀장 △김홍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순화자원연구센터장 △장성록 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국가연구기관에서 학위과정을 수행하며 고유의 전문지식 및 연구 노하우를 함양한 졸업생들이 주요 연구 현장인 출연연에서도 중장기 국책 연구를 이끌어가는 인재로 성장하는 '선순환'을 보여주는 것이다.
UST-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스쿨을 졸업한 고은진 ADD 팀장은 이와 관련해 “출연연 연구 현장에서 각 분야 박사 연구원들에게 직접 질문하고 답을 얻는 과정은 일반 대학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며 “만약 일반 학교를 다녔다면 내가 졸업할 때까지 쌓았던 경험을 다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정은 KISTI 팀장은 “미국 조지아대 학부를 졸업한 후, 그간 쌓은 기초적 전공지식이 실제 연구현장에 어떻게 쓰일지 고민하던 차에 UST를 발견하고 선택하게 됐다”며 “UST는 본인이 하는 만큼 더 많고, 큰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졸업생들은 국내외 대학 전임교원, 산업체 최고기술경영자(CTO), 정부·공공기관 정책 관계자 등 이공계 전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일반대학 전임교원 임용 사례가 지속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다.
'UST는 대학에 비해 커리큘럼이 약하다'는 일부 비판을 무색케 한다. 비전통적인 대학원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이 오히려 전통적 대학 교원이 돼 강단에 서는 상황을 이끌어 냈다.
실제로 단국대, 충남대, 세종대, 미국 베일러 의대, 경상국립대, 전남대, 경북대, 제주대, 대전보건대, 동국대 WISE 캠퍼스 등에서 UST 출신 임용 소식이 들려왔다.
이는 강의 중심의 학부와 달리 '새로운 답과 지식'을 찾는 석·박사과정, UST의 국가연구소 연구 경험 중심 교육이 대학원 과정으로 충분히 우수함을 증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UST 졸업자들은 산업계로도 진출하고 있다. 이미 차세대 벤처 CTO 등 경영진으로 활약하는 사례도 본격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 학위과정 중 탁월한 성과를 배출하고 연구를 이어가다, 산업계에서 활약하게 되는 경우다.
김도연 진코어 CTO, 노성운 리스큐어바이오사이언시스 CTO, 백경훈 엔씽 CTO가 대표적이다.
이 중 UST-한국생명공학연구원 스쿨에서 수학한 노성운 CTO는 “연구 기반시설이 우수한 환경에서 다양한 전문가 연구진과 함께 수행한 연구 경험은, 융합연구가 필수적인 바이오 분야에서 연구 시야와 인적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UST는 이런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각 출연연의 최우수 박사 연구원을 교원으로 적극 임용하며 더 큰 성장을 노리고 있다.
30개 출연연 소속 박사 연구원 중 약 1500명(올해 전기 기준 전임 1331명, 겸임 179명)이 교원이며, 최근에는 신규 교원 약 46%를 40세 이하 젊은 차세대 우수연구자로 임용하고 있다.
소변 1방울로 전립선암 진단 기술을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소속 김호준 교수, 6G 차세대 이동통신 정부 대형과제 총괄책임자이기도 한 최두섭 ETRI 교수,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합성생물학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혜원 생명연 교수 등이 있다.
UST가 최근 임용하는 교원들은 국가 대형과제 책임자, 특수분야 연구자, JCR 상위 3% 이내 및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선정자 등으로, 뛰어난 연구성과를 활발히 배출하고 있는 연구자들인만큼 향후 UST의 커리큘럼 확대 및 강화, 학교 발전에 더욱 크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