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양궁이 파리올림픽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가운데 여자 양궁 대표팀 맏언니 전훈영 선수 활약이 주목받고 있다.
전훈영은 4년 전 도쿄 올림픽 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올림픽이 밀렸고 다시 진행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후 3년간 절치부심하며 다음 올림픽을 기원해왔다.
2014년 세계대학선수권대회 2관왕 이후 국제 대회 수상 이력이 없던 전훈영은 4월 국가대표 선수단에 승선하며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뤘다. 대표팀에 선발되니 2003년생 임시현, 2005년생 남수현과는 10살 안팎 터울 나는 맏언니였다. 두 사람 역시 이번이 첫 올림픽 출전이었다.
전훈영은 언니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내려놓으며 동생들을 살뜰히 챙겼다는 후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리에 도착해 선수단 숙소를 정할 때였다. 숙소가 2인 1실이었고 한 명은 다른 종목 선수와 같은 방을 써야만 했다.
한국식 '방장, 방졸' 문화에서 본다면 맏언니가 막내와 같은 방을 사용하지만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전훈영이 먼저 손을 들고 “탁구 선수와 방을 함께 쓰겠다”고 했다. 본인과 마찬가지로 첫 올림픽인 후배를 위해서였다.
태릉 선수촌 시절과 달리 최근에는 타 종목 선수와는 교류가 뜸하다. 코칭스태프가 '태릉 시절도 아니고 타 종목 선수와 열흘 넘게 있는 게 괜찮겠냐'고 묻자 전훈영은 “동생들이 편하게 지내면 나도 좋다”며 쿨하게 답했다고 한다.
전훈영은 경기장에서도 본인 몫을 톡톡히 했다. 활을 빠르게 쏘기 때문에 단체전 1번 주자로 나섰다. 양궁 단체전에서는 세트당 120초가 주어진다. 선수 3명이 120초 내에 각 2발씩 총 6발을 쏴야한다. 첫 주자가 활을 빨리 쏘면 2번째, 3번째 선수는 그만큼 시간 여유를 갖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중국과 여자 단체 결승전에선 5차례나 10점을 쐈다. 특히 연장 승부 결정전에서도 10점을 쏘면서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2014년 이후 10년간 국제 무대와 인연 없던 전훈영이 성인 무대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순간이다.
개인전에서도 전훈영은 4강에서 임시현과 마지막 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코칭스태프에 따르면 전훈영의 성격은 예민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하고 털털한 편이라고 한다. 단체전 때 가끔씩 엉뚱한 농담을 던져 동생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개인전이 열린 3일에도 전훈영은 임시현에게 장난을 걸며 앵발리드 경기장으로 함께 걸어 들어갔다. 경기 결과에 따라 4강전에서 맞붙을 수 있는 상대였지만, 대표팀 동료이자 맏언니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훈영 활약 덕분에 여자 양궁 대표팀은 단체전 10연패뿐 아니라 혼성전, 개인전까지 여자 선수들이 출전한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세간에서 “국가대표 3명 모두 올림픽 첫 출전이라서 큰 경기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딛고 이뤄낸 값진 성과다.
3일 경기 직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전훈영을 격려했다. 정 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 겸 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이다. 그는 개인전에서 메달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대회 기간 내내 후배 선수를 다독이고 이끈 전훈영에게 직접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지웅 기자 jw031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