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파리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예전보다 미적지근했다. 에어콘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선수촌, 센강 수질 악화로 인한 일부 종목 차질 우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했던 축구, 배구, 농구 등 단체 구기 종목 대부분이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오직 여자 핸드볼만 올림픽 무대를 밟았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기대를 모았던 여자 핸드볼팀은 첫 경기에서 독일을 무너뜨리는 이변을 일으켰음에도 핸드볼 강국인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슬로베니아와 한 조가 되는 불운에다가 독일을 제외한 같은 조 네 나라에게 모두 패하는 전적으로 인해 본선 진출 12개국 중 8강에 들지 못하고 분루를 삼켜야 했다. 외국인 감독의 고용, 대기업의 지원 등 2004년 '우생순' 신화를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쉽게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철저히 기록경기로서 개인기를 기반으로 하는 총(사격), 칼(펜싱), 활(양궁)의 활약은 두드러지고 있다. 금메달 5개라는 목표를 개막 사흘 만에 돌파해버린 우리 선수단은 펜싱 오상욱의 남자 사브르 개인전 금메달을 필두로 단체전 금메달까지 따냈고, 양궁에서는 혼성단체전, 남녀 단체전, 남녀 개인전을 모두 석권해 다섯 개의 금메달을 전부 독식했다. 사격에서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3인방이 10m 공기소총(반효진), 25m 권총(양지인), 10m 공기권총(오예진)에서 금빛 과녁을 적중해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알렸다. 오랜 부상에도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엄청난 정신력과 체력을 선보인 안세영 선수는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역시 세계 1위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러한 성과는 여자양궁의 임시현(21세), 남수현(19세), 사격의 반효진(16세), 오예진(19세), 배드민턴의 안세영(22세) 등 10대와 20대 초반의 보석같은 신예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도 무척 반갑다. 총·칼·활의 성과는 단순히 기록경기라는 종목의 특성을 넘어서는 성공비결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선발 과정의 투명성이다. 양궁은 국가대표를 매년 새로 선발하며 1차 선발전에서 상위 64명, 2차에서 상위 20명, 3차에서 상위 8명을 선발한 뒤 선수촌에 입촌한다. 그러나 선수촌에 들어간 이후에도 상위 3위에 들어야 실제 올림픽 경기에 나갈 수 있다. 직전 올림픽 3관왕도 이러한 선발 과정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으며, 투명한 공개 경쟁의 승리자는 선발 과정 자체에서 더 크게 성장하게 된다.
둘째는 과학기술이다. 사람의 경기력을 압도하는 양궁 슈팅로봇은 인간과의 연습경기에서 임시현과 김우진까지도 패배의 쓴 맛을 보게 했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은 바람과 악천후를 완벽히 읽어내는 상대와 어떻게 대결할 것인지 준비할 수 있었다. 인간과 로봇의 경쟁과 협업은 선수들의 위기대처 능력을 극대화해내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또 2017년 문을 연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 선수촌은 35개 종목 1150명이 동시에 훈련할 수 있는 규모로 가상현실 시뮬레이터, 음양압 챔버, 육상 등 스타트가 중요한 종목을 위한 실내 스타트 훈련장, 첨단 장비로 무장한 메디컬센터, 스포츠과학센터, 웨이트트레이닝 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반면 경기력보다 서열을 중시하는 종목, 선수 선발이나 코치진 선임이 주먹구구로 이뤄지는 종목들은 올림픽 본선에도 나가지 못했다. 올림픽 본선에 나가지 못한 종목에도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지만, 그러한 선수들을 받아낼 그릇(조직)이 없었기에 그들의 꿈마저도 사그라진 것이다. 언제까지 낡은 조직들이 젊은 선수들의 꿈을 좌절시킬 것인가. 각성이 필요하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