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지원·편법승계를 한 삼표그룹에 과징금 116억2000만원을 부과했다. 레미콘 제조업을 영위하는 그룹 핵심 계열사가 총수(동일인)의 장남 회사로부터 레미콘 원자재를 높은 가격에 매입했다는 혐의다.
공정위는 8일 기업집단 삼표 소속 계열회사 삼표산업이 에스피네이처를 부당하게 지원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부과하고 지원주체인 삼표산업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에스피네이처는 국내 분체시장 1위 사업자로 동일인인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남 정대현 삼표시멘트 사장이 최대 주주로 71.95% 지분을 보유했다. 삼표산업은 에스피네이처로부터 레미콘 제조에 필요한 분체를 합리적 이유없이 장기간 고가에 구입해 에스피네이처를 부당 지원했다. 공정위는 삼표그룹이 에스피네이처를 그룹 모회사로 만들고자 했다고 봤다.
삼표산업은 2016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4년간 국내 분체시장 거래물량의 7~11%에 이르는 상당한 규모의 물량을 사실상 에스피네이처로부터 전량 구입했다. 이 과정에서 에스피네이처가 비계열사에 판매할 때 보다 오히려 높은 단가에 분체를 구입했다.
에스피네이처는 삼표산업과의 위와 같은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정상적인 공급단가로 거래하였을 경우에 비해 74억9600만원의 추가 이윤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에스피네이처는 국내 분체시장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등 사업기반을 인위적으로 유지·강화할 수 있었다.
유성욱 공정위 기업집단감시국장은 “삼표그룹은 2013년 에스피네이처를 설립한 이후 다수의 계열사를 에스피네이처에 흡수합병시켰고, 이를 통해 에스피네이처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했다”면서 “삼표그룹은 에스피네이처의 안정적인 수익창출원 확보를 추진했고 분체 판매는 에스피네이처의 중요한 캐시카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스피네이처는 보유 자금을 바탕으로 삼표와 삼표산업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율을 늘리는 한편, 매년 정대현에게 배당금 명목으로 상당한 금액을 지급했다”면서 “에스피네이처는 정대현으로의 삼표그룹 경영권 승계 기반 마련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공정위 조치는 부당지원이 없었더라면 형성되었을 정상가격을 추정하는 과정에서 경제분석을 활용한 최초 사례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 공정거래연구센터와 협업해 정상가격과 부당지원금액을 산정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