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잇따라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공포심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전기차 배터리를 시한폭탄처럼 인식하고 있다.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지하주차장의 전기차 출입을 둘러싼 갈등도 빈발하고 있다.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를 지상으로 모두 옮겨야 한다는 요구도 적지 않다.
문득 2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당시 밤새 충전 중이던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달리던 전기차가 충격으로 불길에 휩싸이는 사고가 발생하며 전기차 화재가 이슈가 됐다. 기자는 2022년 8월 11일자로 '전기차, 정말 불이 잘 날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칼럼에서 “전기차에 대한 화재 사례가 적어 내연기관차보다 화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객관적 수치로 입증하긴 어렵다”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전기차 화재 때 발생하는 열폭주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와 제조사가 화재 사고 사례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향후 과제를 함께 고민하자”는 의견을 제안했다. 또 “평소 안전한 배터리 충전 방법과 화재 시 긴급 요령 등 전기차 이용자를 위한 교육과 홍보 체계를 마련하자”고 덧붙였다.
지난 2년 사이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도로를 달리는 전기차는 30만대에서 60만대로 2배나 늘었다. 하지만, 안전 대책은 크게 달라지 않았다. 올여름 다시 전기차 화재가 발생했고, 피해 규모는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이달 1일 인천 전기차 화재로 차량 140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고, 480여세대의 전기와 물 공급이 끊겼다.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자 정부는 12일 환경부 주관으로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소방청 등이 참여하는 관계부처 긴급회의를 연다. 내달까지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지난 수년간 전기차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고, 많은 전문가가 열폭주 현상에 대한 위험성을 계속 제기해 왔다는 점에서 정부는 늑장 대처에 대한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제라도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를 진입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충전기 지상 이전같은 방안은 실효성이 낮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배터리 정보 공개 방안 등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제조사들은 영업기밀 등을 이유로 밝히지 않은 배터리 공급사 정보 공개를 강제한다면 법적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수입차의 경우 통상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출시 이전 배터리 시험 평가 체계를 마련하는 등 소비자 안전 대책에 민관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주문한다. 배터리 이상을 감지해 경고하며 열폭주 전 지연 성능을 갖추는 등 안전장치에 대한 법적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기차는 국가 경제의 큰 축인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을 이끄는 미래 먹거리다. 수천억원을 들여 전기차를 개발하고, 수조원을 투입해 전용 신공장을 건립하고 있는 업계는 불의의 화재가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일련의 화재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알맞은 후속 조치를 내놓길 바란다. 국민이 믿고 전기차를 탈 수 있는 안전한 사용 환경 조성을 위해 정부는 물론 제조사, 연구기관 등이 함께 나서야 할 시점이다.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