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간 디지털동반자협정(DPA) 체결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전자상거래 파트에서 명시한 디지털 제품의 비관세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과 사이버 보안, 디지털 신원, 전자인증 및 전자서명 등을 포괄한 국가간 디지털경제 협력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1년 최초로 싱가포르와 디지털동반자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2023년에는 싱가포르·뉴질랜드·칠레가 참여하는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에 가입했으며, 현재 유럽연합(EU) 및 영국과 협상 중에 있다.
디지털동반자협정이 중요한 이유는 국내로 한정된 디지털 서비스 시장을 글로벌하게 확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디지털 서비스 해외진출은 기업이 먼저 해당 국가로 진출한 뒤 현지화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디지털동반자협정이 체결될 경우에는 동등한 법·제도적 효력을 받으면서 협정 국가와 디지털 서비스 시장을 상호 공유할 수 있다.
이를 보여주듯 미국은 구글과 애플,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외국에 현지화하는 방식을 통해 글로벌 디지털 시장을 선점했다. 이에 대항해 EU는 27개 회원국가 간 디지털 싱글마켓을 구축 운영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등 역외 국가와의 디지털동반자협정을 체결해 EU 디지털 싱글마켓의 글로벌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디지털동반자협정을 체결하더라도 국내 디지털 서비스가 글로벌하게 확장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 디지털 서비스 인프라의 글로벌 전환과 함께 국가 간 상호인정 체계 구축이 선결돼야 한다. 즉, 국내 디지털 신원과 전자서명 등의 각종 전자인증 등이 글로벌 표준과 호환될 뿐 아니라, 협정 국가와도 상호 인정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다행히 EU는 27개 국가간 디지털 싱글마켓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국가 간 디지털 신원과 신뢰서비스를 위한 여러 기술표준, 관리체계, 오픈소스 등을 공개했으며, 최근에는 디지털 신원 지갑을 법제화하고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EU의 경험과 산출물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국가 노드 기반의 디지털 서비스 상호인정이 가능한 플랫폼 모델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자정부 서비스, 소셜 플랫폼 서비스,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 전자인증 서비스 등 우수한 디지털 서비스를 갖추고 있으며, 경쟁도 심화되는 상황이다. 앞으로 디지털동반자협정을 체결하는 국가가 많아지고, 국가간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 구축이 보편화되면 우리나라는 국가 간 디지털 서비스를 통해 보다 많은 이용자와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이 자국의 디지털 신원으로 접속해 국내 소셜 미디어나 OTT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국내 전자서명인증사업자나 공인전자문서중계자가 EU 인증을 받아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캐나다 학교에서 발급한 전자졸업증명서를 국내 기업 입사시험의 증빙서류로도 이용하는 것이 바로 그 예다.
이러한 국가 간 디지털 서비스 모델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로 국내 디지털 인프라를 글로벌 기준으로 혁신하고 실증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 기업이 디지털 혁신과 글로벌 디지털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임영철 한국인터넷진흥원 전자문서확산팀 연구위원 yclim@ki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