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소지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스마트폰이라고 답한다면 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스마트폰의 휴대성과 다양한 기능 덕분에 이제 스마트폰 없는 세상이나 생활은 디스토피아로 여겨질 정도다. 그리고 새롭고 신기한 기능이 계속 탑재되면서 이제는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게다가 최신 기술의 발전을 스마트폰으로 직접 경험하고 신제품과 액세서리 출시, 앱 소개, 요금제 변경 등 스마트폰과 관련된 언론 보도와 광고가 하루도 빠짐없이 대중에게 전달된다.
이처럼 스마트폰으로 시작해서 스마트폰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과잉' 디지털 시대에 대해 피로감, 스트레스, 소외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나 생각을 갖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앞 예시만큼은 아니지만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지면서 스마트폰 자체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나 각종 무선기기와 기지국을 연결하는 무수한 전파의 흐름이 혹시 위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가지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이 전자파 안전에 관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는 홈페이지에는 단순 문의부터 전자파 측정 신청과 측정기기 대여 신청에 이르기까지 연간 4000여건의 요구가 들어오고 있다. 지난 6월 말 기준, 통신 3사가 운용중인 LTE 기지국은 55만여국((전파누리 전국망 통계자료 기준·보조망 포함 시 107만여국), 5G 기지국은 34만국으로 향후 5G 기지국이 LTE 기지국 대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년여 기간 설치된 5G 기지국은 LTE 기지국 대비 높은 주파수를 사용함에 따라 전달 거리가 짧아서 커버리지가 좁으므로 더 많은 기지국이 필요하다. 따라서 가시적으로 보이는 기지국도 늘어나고 이에 비례해 도심이나 주거지역 중심으로 전자파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는 사람도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데이터센터(IDC), GTX 변전소와 같은 디지털 시대 핵심 인프라나 국가 기반시설이 새로운 전자파 갈등 시설로 부각되고 있다. 이들 시설에 연결돼 전력을 공급하는 고압전력선으로 인해 발생하는 전자파 불안감도 늘어나면서 시설을 구축하는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인공지능(AI), 6G 등 미래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전자파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해 인체 안전도 지키고 생활 편의성과 경제, 산업 활성화를 동시에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높아지는 국민 의식 수준에 부응하고 급변하는 전자파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전자파 인체보호 정책과 관리 제도가 언제까지 유효할지와 미래 대비 차원에서 새로운 전자파 안전정책과 측정 기술 및 방법론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전자파 방출원에 대한 관리, 복합·상시 관리로 변화가 필요할 때
전문가들은 5G 시대의 성숙기이자 6G 태동기인 지금이 전자파 관리체계의 변화를 위한 적절한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한국의 전자파 인체보호 제도는 특정 무선국(이동통신 기지국, 방송국 등) 하나를 대상으로 전자파 인체보호기준 적합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파법에 따라 일정 안테나 출력(이동통신 기지국의 경우 30W) 이상인 무선국을 운영하는 시설자는 해당 무선국의 전자파 강도(세기)를 측정해 정부가 정한 전자파 인체보호 기준 이내로 적합하게 운영하고 있음을 보고해야 한다. 만약 전자파 인체보호 기준을 초과하면 정부는 무선국의 운영을 중지하거나 적합한 안전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개별 무선국의 전자파 노출량을 일정한 기준 이하로 제한해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통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방법적 효율성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5G 서비스와 2030년경에 상용화될 6G 서비스는 기지국 안테나 출력은 낮추는 대신 이를 촘촘하게 설치해 사용자의 통화품질(전송속도)을 높이는 기술이다. 따라서 기지국 수가 계속 많이 증가하고, 단위면적 당 기지국 밀도가 높아지면서 기지국이 사람들에게 더 가까워져 전자파로 인한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개별 안테나의 출력은 낮아진다고 해도 기지국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전체 전자파 방출량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재의 측정 방법으로는 5G나 6G용 기지국의 전자파 안전성을 판단하기에 한계가 있고 기지국 수가 증가할수록 개별 기지국을 관리하는 것은 효율적 측면에서도 적합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 사용 시간대와 장소에 따라 전자파 강도가 다른 지금의 통신 방식에는 특정 시기의 일회 측정보다는 여러 무선국의 전자파 세기를 동시에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방법이 더 효율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전자파 모니터링의 시대
유럽은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등 30개 국가가 전국 주요 지점에 전자파 세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장비를 설치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이해와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대표적인 예로 스위스 정부는 전자파 모니터링 정보를 토대로 이동통신 기지국이나 전자파 방출 시설이 지역 내에 설치될 때 주민들이 객관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독일도 연방방사선보호청(BfS) 주관으로 전자파 측정소를 전국에 설치해 실시간 데이터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전자파 노출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 뉴욕주 등에서 상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도 개별 무선국이나 시설 중심의 제도에서 전자파 세기를 실시간 상시 모니터링하는 정책으로 바꿔나갈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70만국 이상의 방대한 무선국 전자파 강도 측정 데이터를 보유, 공개하고 있다. 이를 분석해 전자파 발생 패턴을 예측하고, AI 기술을 활용해 전자파 세기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을 찾아 적합한 모니터링 장소를 결정하면 효율적으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
◇전자파 측정 산업 발전
한편, 전자파 모니터링 측정기기 시장도 전 세계적으로 성장이 예상된다. 리서치앤드마켓(Research and Markets)의 전자파 모니터링 관련 글로벌시장 예측에 따르면 2023년 114억달러(약 15조원)에서 2030년 148억달러(약 20조원)로 연평균 3.8% 씩 꾸준한 성장이 예상되고, 개인 전자파 모니터링 기기 시장은 2030년까지 46.2억달러(약 6조원)로 연평균 4.1% 성장하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자파 측정기기 산업은 미국, 독일 등에 비해 후발 주자였지만 5G 도입을 계기로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특히 전자파 모니터링 측정기기 분야는 글로벌 업체와 대등한 수준이 되었고, 개인용 전자파 모니터링 측정기기는 틈새 전략으로 국내 중소업체가 외국 기업보다 먼저 기술을 개발하는 등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국내 시장이 협소하고 공급 실적이 거의 없어서 수출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는데 만일 실시간 전자파 모니터링 정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국내 전자파 측정 시장의 확대와 더불어 이를 발판으로 한 글로벌 진출 성공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앞서 언급한 5G 기지국 구축 확산과 데이터센터, 각종 전기 시설의 설치 확대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전자파의 인체 영향과 안전한 관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KCA는 세계 전자파 인체보호 콘퍼런스(BioEM 2024)에 참가해 국내 중소업체와 공동 개발한 소형 전자파 모니터링 측정기를 참가국에 시연 및 홍보하는 자리를 가져 참가국의 호평을 받았다. 소형 전자파 모니터링 측정기는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주변의 이동통신 기지국을 비롯한 주파수 대역(Radio Frequency) 전자파 세기와 전자파 인체보호 기준 적합 여부를 스마트폰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또, 6월 폴란드에서 개최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표준화 회의(T_SG5) 총회에서 한국의 전자파 취약지역(유아·아동 시설, 인구 밀집 장소)에 대한 상시 정밀 측정 사례를 관련 보고서에 등록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전자파 정보제공, 이해와 소통의 시작
국민이 전자파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전자파 자체에 대한 인체 영향이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전자파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지식 부족의 원인이 크다. 따라서 전자파 관련 정확한 정보제공과 투명한 공개를 바탕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전자파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립전파연구원은 휴대폰의 전자파 흡수율을 측정해 안전한 휴대폰이 유통되도록 하고, 생활제품의 전자파 방출량 측정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KCA는 전자파 상시 관찰이 필요한 지역에 대한 모니터링을 비롯해 유아·아동 시설 전자파 안전진단, 일반 생활 및 산업환경 전자파 조사, 소형 전자파 측정기 무상 대여 서비스 등을 통해 환경 전반의 전자파 세기를 측정하고 저감 컨설팅을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KCA는 앞으로도 전자파 갈등이 예상되는 지역이나 전자파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에게 더 신속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전자파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또,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전자파 인체보호 기준을 중심으로 전자파의 인체 영향에 대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를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다양하게 제공할 것이다. 이를 통해 날로 증가하는 디지털 기기와 장비들을 국민께서 안심하고 사용해 생활 편의성과 사회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 해 나갈 것이다.
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
〈필자〉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에서 정치학 석사,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정보기술경제학 석사를 취득했다. 옛 정보통신부 국제협력관실, 옛 방송통신위원회 그린IT팀장, 정보보호팀장, 공보팀장, 옛 미래창조과학부 다자협력담당관, 과기정통부 정보보호기획과장, 우정사업정보센터장, 중앙전파관리소장을 역임하고, 2023년 11월 제8대 KCA 원장에 취임했다. 27년간 전파·방송·정보화·정보보호·국제협력 분야 정책 수립과 실행을 위해 노력한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