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더 크고 담대한 꿈을 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타계한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2018년 출간한 책 '작은 꿈을 위한 방은 없다'에서 남긴 문장이다. 페레스는 국무총리를 2번 역임했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인물이 95세에 낸 책을 통해 후회한다고 말한 진의는 알지 못하지만, '더 크고 담대한 꿈'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크고 담대한 꿈'의 효과는 기업의 관점에서도 같은 무게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신선한 아이디어에 기술을 결합해 출시한 서비스가 국내 시장에 머무르는 사이, 외국 기업이 나중에 출시한 거의 유사한 기능의 서비스가 전 세계에 확산되면서 국내 가입자들마저 빼앗긴 안타까운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인터넷 전화와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 서비스 등 인터넷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된 20여년 전 시점부터다.
사업을 구상하고 비즈니스를 설계한 뒤 실행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두느냐, 국내 시장만 바라보느냐의 관점 차이가 빚어내는 현격한 차이일 것이다.
생산 거점과 공급망을 구축하고 방대한 영업망을 가동해야 하는 제조업 관점에서는, 초기단계부터 글로벌 비즈니스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보기술(IT)산업, 특히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는 생산 거점이나 공급망 구축 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디어와 기술로 무장한 기업은 누구나 글로벌 시장 진출 기회에 접근할 수 있다.
마치 모바일 시장에서 앱스토어(AppStore)와 마켓플레이스(Marketplace)를 통해 앱을 다운로드하기만 하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카카오톡 서비스를 전 세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기반으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방식의 서비스에 나선다면, 단숨에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IT 분야에서 기라성처럼 떠오른 글로벌 SW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SaaS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노션(Notion), 데이터독(DATADOG), 서비스나우(ServiceNow) 같은 글로벌 SW 기업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이 창업 이후 우리나라에 법인을 설립하는데 걸린 기간은 10년 안팎에 불과했다.
2013년 설립된 노션의 경우 글로벌 확장을 본격화한 덕분에 2019년 100만명이던 사용자가 4년 후인 2023년 3000만명으로 폭발적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다.
데이터독은 창업 5년만인 2015년 AWS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클라우드 등 클라우드 서비스 대표 3사를 지원하면서 급성장해 2019년엔 87억달러 가치(현재 환율기준 약12조원)를 인정받으며 나스닥에 상장했고 현재 기업가치는 370억달러(환율기준 약51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서비스나우 역시 글로벌 클라우드 기반 IT서비스관리(ITSM)플랫폼으로 포천500 기업의 85%의 기업에 서비스를 공급하며 관련 분야 1위 기업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현재 시총1650억달러(환율기준 약226조원)로 여전히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SW업계 최상위 기업들도 어김 없이 전통적인 SW 설치 방식에서 벗어나 SaaS 기반의 구독형 모델로의 진화를 마쳤다. 마이크로소프 M365(오피스 클라우드)시작으로 대부분 제품을 구독형 모델로 전환했으며, 오라클은 전통적인 데이터베이스 제품도 구독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SAP는 2018년 이후 SW 라이선스를 클라우드 기반 구독 및 조회수 기준 과금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
2023년 기준 글로벌 SaaS 시장 규모는 1970억달러로 추산되며, 2024년에는 2470억달러로 25%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반면 SW 시장 규모는 2024년에 7040억달러로, 약 10%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SaaS가 SW 시장보다 두 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글로벌 시장의 흐름에 비하면 국내 SW 기업의 SaaS 전환 속도는 상대적으로 많이 더딘 편이다. 올해 초 정부가 펴낸 국내 클라우드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SaaS 시장은 2조원 규모를 넘어서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2000억달러에 규모의 글로벌 시장에 비하면 1%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아직 국내 SW 업계가 SaaS 전환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기회와 성장 여력이 크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정부도 이같은 여건을 감안해 올해 클라우드 산업 육성에 1200여억원을 투자해 SaaS 기업 전환 및 성장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중요성을 공감하고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창업한 신설법인은 모두 12만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SW 스타트업만도 수천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사업모델로 SaaS를 활용해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 진출이라는 더 크고 담대한 꿈에 도전하는 SW 스타트업들이 잇따라 등장하길 기대한다.
이주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해외진출위원장·메가존클라우드 대표 max@megazo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