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자정부는 국제연합(UN) 평가 등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모든 국민은 언제 어디서나 신속 공정 저렴하게 민원서비스를 받고 있으며 행정기관과 국민의 양방향 소통도 확대되고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러한 편리성은 더욱 가속화됐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연달아 발생한 대형 공공정보시스템에의 마비 및 오작동 사례는 국민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했고 그간의 명성을 무색하게 했다.
정부는 사고원인에 대한 다각적인 조사에 착수해 상당수 원인을 밝혀냈는데, 문제는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정보시스템은 사용자의 요구사항 증가·변경과 엄청난 기술발전에 따라 수시로 시스템 변경이 이뤄진다. 시스템을 개발 구축할 때에는 발주청과 구축사업자 외에 감리자가 제3자 입장에서 시스템 정상 작동과 보안 및 효율성을 확보하는 점검을 하게 된다.
공공분야에서는 이러한 감리가 법적으로 강제되고 있지만 허점이 있어 감리의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없게 하고 있다.
정보시스템은 새로 구축되면 5년 이상 장기간 운영되고 그 후 전면적인 재구축을 실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5년의 기간은 정보화 분야에서는 매우 긴 시간이다. 이 기간 중 접속자의 급증, 내장 정보의 양적·질적 확대, 그리고 당장에 적용해야 할 새로운 기술개발 등이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현재 최초 구축과 개발단계에서만 의무감리가 행해지고 5년의 운영기간 중 시스템 유지 보수단계에서는 감리가 생략되고 있다. 법적 강제가 없다는 점 외에 예산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유지 보수과정에서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가해진다는 점은 예산의 배정실태에서 증명된다.
우리나라 국가정보화사업 예산을 살펴 보면, 전체 예산 중 유지 보수비용이 65%를 차지해 구축에 소요되는 35%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유지 보수에는 감리예산은 배정되지 않고 따라서 발주청은 감리를 실시할 방법이 없다.
아울러 유지 보수기간이 종료해 재구축이 진행될 때 이미 이뤄진 시스템 변경 보완부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대해서도 감리가 소홀하게 행해질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서는 운영감리를 감리에 당연히 포함하고 있음에도 시행령에서는 의무감리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운영감리는 예산의 배정을 전혀 받지 못해 발주청이 운영감리를 실시하지 못한다.
전자정부법상 감리의 용어 정의에서는 제3자적 관점에서 시스템 구축·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종합 점검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하기 위해 실시한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의무감리의 범위를 위임받은 시행령에서는 운영감리를 제외시킨 것이다.
공공분야의 정보시스템은 행정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다.
개발 구축에 할당되는 예산을 잘라내 사업을 축소하더라도 유지 보수 감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정보시스템 마비 등으로 인한 손실을 비용적 측면에서만 비교해도 유지 보수 감리에 투입되는 비용의 효용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감리가 중요한 대표적 사례인 건축분야에서는 필수적 감리 대상이 되는 건축행위에 대해 건축물의 신축은 물론 증축, 개축, 재축, 이전까지도 포함하도록 규정해 정보시스템 감리와 대조를 이룬다.
건축물의 안전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행정기관 등이 운영하고 있고 국민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이용되는 정보시스템 중요성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또 정보시스템 유지 보수는 신기술을 바로 반영해야 하고 접속자가 폭주하는 인기 시스템일수록 용량 확대 등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 건축물 증축 개축 등 경우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전자정부에 대한 정부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투자재원의 배분이 적절하지 못하다면 성공적인 제도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우리가 이뤄 낸 정보시스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라도 운영감리 의무화를 위한 법제 보완과 소요 재정 확보가 하루 빨리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오해석 가천대 석좌교수 oh@ga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