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광복절과 방패연: 항공 모빌리티와 통신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파리 올림픽은 사람을 태운 열기구로 하늘을 나는 모습을 연출했다. 프랑스가 인류 최초로 기구를 사용한 비행술을 발명했음을 전 세계 시청자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세계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의 미국보다 한발 앞선 항공 선진국이다. “비브 라 프랑스(Vive la France)!”, 1960년 핵실험에 성공한 샤를 드골 대통령의 외침이다.

하늘을 나는 꿈은 인류공통의 오랜 소망이다. 기구, 비행기, 로켓보다 먼저 하늘로 날아오른 것은 연이었다. 비록 무인비행이었지만. 미래 항공 모빌리티의 총아인 드론도 무인비행이지 않은가. 한국의 연은 방패연과 가오리연 두 가지다. 가오리연은 세계적으로 가장 흔하고 제일 쉽게 띄워지는 연이다. 오직 한국에만 있다는 방패연은 하늘로 띄우기 정말 어렵다. 첫째, 5개나 되는 연살은 너무 무겁다. 둘째, '꼬리날개'가 없다. 전방향 균형잡기에 정교한 제작기술이 필요하다. 셋째, 가운데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샌다. 넷째, 보기 드문 세로 직사각형 모양이다. 초보 항공역학 관점에서는 너무나 바보스러운 비행체처럼 보인다. 아니다. 방패연은 '국보'로 지정해야 할 항공 제어 기술의 놀라운 집약체다. 방패연의 고유한 용도는 크게 두 가지, '전투'와 '통신'이다.

연싸움은 상대방의 연줄을 끊어내면 승리하는 공중전이다. 공중전의 승패는 전투기의 성능과 조종사의 제어능력에 달렸다. 하지만 연줄은 단 한 줄 뿐인데, 어떻게 전투 조종이 가능하단 말인가. 놀랍게도 안정성과 민첩성을 갖춘 비행제어는 오직 방패연으로 가능하다. 방패연의 뚤린 구멍은 스포츠카의 에어로다이내믹 디퓨저나 에어벤트처럼 공기저항을 줄이고 안정적 자세유지와 기민한 주행성능을 제공한다. 꼬리날개가 없어야 신속한 회전이 가능하다. 빠른 직진성은 직사각형 좌우대칭 구조에서 나온다. 연줄을 잡아당기면 하늘 높이 수직상승한다. 순간적으로 연줄의 고삐를 풀어주는 순간 직진성이 흐트러지며 자유로운 그러나 안정적인 요동상태로 돌입한다. 요동 중인 방패연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렬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고삐를 조이면 새 정렬 방향으로의 직진비행이 시작된다.

연싸움의 승리 비법은 상대 연보다 빠르게 수직 상승 후, 높은 고도에서 상대의 연줄 위를 넘는 수평비행으로 제공권을 확보하자마자 빠른 수직 강하로 상대의 연줄 위로 올라타는 기술이다. 그 후엔 재빠르게 얼레를 풀어 내 연줄의 마찰열로 상대의 연줄을 끊어낸다. 고도의 원격제어 '전투드론'이다. 드론은 미래 공중전의 총아다. 방패연은 인류 최초의 '무인 종이드론'이다. 산업화 시대의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에 견줄 기계식 주행기술 축적의 결정체다. 꼬리 없는 에어로다이내믹 직사각형 구조를 능가할 전투연의 재설계는 어렵다.

마을 할아버지께 방패연 기술을 배운 초등생 소년은 '종이 드론'의 자유자재 원격제어 기술에 매료됐다. 중학생이 된 소년은 모형항공기 반에 들어가 고무동력기와 글라이더를 만들었다. 전쟁 막바지에 몰린 일제는 비행장 활주로 건설에 학생들을 동원했다. 소년의 꿈은 원격조종 모형항공기 만들기였다. 천신만고 끝에 전자부품들을 구해 단파 송수신기 제작에 성공했다. 한국 최초의 RC 항공기 개발이었다. 당시 단파 송수신기는 일본 헌병대와 관동군이 각 1대씩만 보유했던 최첨단 군사장비였다. 우연히 소년의 조종기로 단파방송이 수신됐다. “여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주석의 목소리였다.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일제 치하에서 나고 자란 열다섯 소년은 처음으로 조국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제의 패망이 가까웠음도 알았다. 불타오른 소년은 사람들에게 노래와 복음을 전했다. 소년은 전쟁 막바지, 이 땅의 마지막 독립만세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로 체포돼 서대문 형무소와 인천 형무소에 복역했고, 일제 패망 이틀 후인 1945년 8월 17일 처형 직전에 석방됐다.

방패연은 기하학적 문양들의 '디지털 조합'을 시전하는, 봉화대 신호체계와 함께 전국망 정보통신체계이기도 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대학생 청년은 6·25 전쟁 발발로 공군에 입대했다. 전쟁 중 5000명의 타자수가 중구난방 전달하는 군 명령체계를 디지털 코드화한 공로로 무공훈장을 받았다. 방패연의 추억과 미8군 태평양 사령부의 전산 명령체계에서 받은 충격을 국군에 도입했다. 청년은 제대 후 모형항공기 대회를 창립했고, 물리학자로 살았다. 방패연의 항공역학과 원격제어기술에 매료된 어린 소년은 운명처럼 만세운동과 군 명령체계 혁신과 현대 물리학과 조우하며 건국훈장·무공훈장·국민훈장이라는 세 개의 별을 여행했다. 지금은 현충원에 영면 중이신 필자 부친의 실제 인생 이야기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