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계, 특히 중소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시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26년 도입 예정인 EU CBAM은 탄소 누출을 방지해 EU 기후중립 목표 달성과 세계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한다는 취지를 내걸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역장벽'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서 말하는 무역장벽은 국가 간 자유로운 무역을 제한하거나 방해하는 정책이나 조치를 의미하는데, 이런 무역장벽은 부호무역주의 일환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거나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수출이 국가 핵심 산업인 우리나라에게는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EU 수출액은 681억달러고, CBAM 대상 품목 수출액은 51억달러로 전체 EU 수출 비중 7.5%를 차지한다. 특히 CBAM 품목 중 하나인 철강은 EU 수출액이 89.3%를 차지한다.
◇2년 앞 다가온 EU CBAM 도입…탄소 배출량 따라 추가 비용 부담
CBAM은 철강·시멘트·알루미늄·비료·전력·수소 등 탄소집약적 제품 수입시 생산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에 따라 일종의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제도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앞으로 친환경적인 공정으로 만든 제품을 수입하고 싶어. 따라서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 때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 많은 탄소량을 발생시켰으니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을 받겠어”이런 의미다.
EU CBAM이 현재 도입된 것은 아니다. 2023년 5월 16일 발효했으며, 2023년 10월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 전환 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확정 단계로 들어서 본격 도입된다.
2023년 8월 17일 EU 집행위원회는 전환 기간에 대한 CBAM 이행규정을 채택해 전환 기간 EU 수입업자 의무는 보고의무로 제한하지만, 보고의무를 준수하기 위해 EU로 제품을 수출하고자 하는 수출업자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도록 했다.
현재 CBAM 규정 적용대상 품목은 시멘트, 전력, 비료, 철강, 알루미늄, 수소로 총 여섯 가지다. 우리나라는 여섯 가지 중 대부분 품목을 EU에 중점 수출하고 있다. 이에 2026년 1월 1일부터 EU내에서 적용제품을 수입하는 곳은 CBAM 등록부를 통해 관할당국에 직전 연도에 대한 CBAM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탄소 배출량에 대한 CBAM 인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런 제도에 맞춰 국내 기업도 준비가 필요하다. 수입업자에게 관련 데이터를 제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생산업체들은 탄소 배출량 산정에 중요한 데이터를 모니터링하고, 이를 수입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추가 배출량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탄소감축으로 가격 경쟁력을 지켜야 하는 숙제도 안게 된다.
EU 집행위원위는 CBAM 이행규정과 함께 수출업자들이 수입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할 때 활용할 수 있는 템플릿(링크)도 제공했다.
◇EU 수출기업 110개 컨설팅…목표치 유지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의 EU CBAM 대응을 위한 컨설팅 준비에 분주하다. 중기부에 따르면 EU 수출 중소기업은 지난해 기준 1358개다. 이중 수출액 1억원 이상 기업은 355개 수준이다. 이들이 내년 말 확정될 EU CBAM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2026년부터 생산비용 관세까지 부과돼 더 많은 부담이 생긴다.
중기부는 최근 제3차 '중소기업 CBAM대응 인프라구축 사업' 공고에 착수했다. 두 차례 인프라 구축 공고를 통해 110개 대상 업체를 선정해 컨설팅 절차에 착수했지만, 일부 업체가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추가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110개 업체가 제2차까지 진행된 인프라구축 사업 공고를 확정했지만, 최근 일부 업체가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추가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라면서 “올해 목표치인 110개를 마무리하려고 추가 공고를 진행했으며, 일부 업체는 이미 컨설팅 절차를 통해 인증서 작성에 돌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기부는 EU 수출규모가 1억원 이상인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제품 단위 탄소 배출량 측정·산정, EU-ETS 검증기관을 활용한 검증보고서 발급 등 중소기업 탄소 배출량 산정·검증 과정을 직접 지원하고 있다.
◇기본값 말고 실제 탄소배출량 내라…中企, 발등의 불
EU에 CBAM 대상 품목을 제출해야 하는 기업들도 이달부터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탄소 배출량 산정 방법이 8월부터 EU 집행위원회가 제시한 기준인 기본값에서 사업장이 실제 배출하는 데이터를 내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신서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EU CBAM 전환 초기 탄소 배출량 산정 경험이 없는 기업이 많아 기본값을 요구했지만, 시행한 지 3분기가 지나 8월부터 EU에서 실제 업체가 배출하는 수치를 제출하게 됐다”면서 “기업들 입장에선 부담이 더 커진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도 중소기업들은 EU CBAM에 대한 준비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간 공정마다 탄소 배출량을 산정했던 기업은 극히 적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해외 대비 경쟁력 높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더 집약된 공정을 투입했던 국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도 쉽지 않다. 일각에선 고도화된 스마트공장을 통해 데이터를 추출, 기업 자체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조절하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윤호 기자 yu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