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구는 과학기술 혁신의 밑바탕이 되는 중요한 분야다. 양자 컴퓨터에 관심이 높아진 것은 1996년 피터 쇼어의 소인수 분해 알고리즘 발견이 크게 기여했다. 또 mRNA 백신은 202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카탈린 카리코와 드루 와이스먼이 약 30년 전 수행했던 가짜 유리딘(pseudo uridine)을 통한 mRNA의 면역반응 회피 연구가 그 바탕이 됐다. 세계 주요국은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고위험·고수익 기초연구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우리나라도 기초연구 예산을 대폭 확대했다. 2025년도 기초연구 예산(안)은 역대 최대 규모인 2.94조원으로, 확정된다면 지난 10년간 약 167% 증가한 셈이다. 이는 정부와 현장의 연구자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로, 앞으로 연구자들이 기초연구에 안정적이면서도 도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양적 규모가 확보된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기초연구는 몇 가지 과제에 직면해 있다. 기초연구 예산이 급증했음에도 학문 분야별(자연과학·공학 등), 세대별(신진·중견 등) 지원 불균형에 대한 연구현장의 불만이 지속되고 있다. 아울러 연구계 밖에서는 기초연구 예산이 단기간에 급증함에 따라 성과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다. 특히 SCI 전체 논문 수는 양적으로 증가했지만, 피인용도 등의 질적 성과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6월 '2025년도 국가연구개발 예산배분조정(안)'을 발표하며, 기초연구 분야에 성과제고와 전략성 강화 등을 위한 신규 트랙을 제시했다. '개척연구'는 새로운 분야의 개념 탐색 및 정립 등 세계 최초 연구를 지원하는 과제이고, '도약연구'는 잘하는 연구자가 더 잘할 수 있도록 후속연구를 지원한다. 국가 전략목표에 따라 자율 연구영역을 설정하는 미들업 방식인 '국가어젠다 기초연구'를 신설하고, 출연연 등 지역 혁신주체가 참여하는 지역특화형 거점연구소도 육성한다고 한다.
또 정부는 대학에 안정적 연구비와 연구실 구축비 등을 블록펀딩 방식으로 지원해 대학의 강점 분야 및 연구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재원을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를 통해 대학 연구소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제고하고 연구자들에게 안정적 연구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연구의 효과적 지원을 위해서는 위와 같은 지원체계 개편과 함께 성과관리와 평가체계 등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우선 연구관리전문가(PM)의 책임·역할 확대를 통해 전주기적 기초연구 기획·관리 체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기초연구 기획·설계, 성과분석 및 성과제고 방안 마련 등 정책지원과 함께 과제 선정부터 연구 수행까지 전담하는 관리체계 도입이 절실하다. 세계 최고·최초 등 연구 목표에 따라 평가지표를 차별화하고 평가위원의 평가를 지원하기 위한 연구활동 분석 서비스 도입, 우수평가자 후보 풀(Pool) 관리 등을 통해 선도형 연구개발(R&D) 에 맞도록 평가 시스템도 고도화해야 한다.
또 평가 전 과정에 대한 공정성과 투명성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PM의 자율성 강화에 맞게 책임성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초연구 R&D 투자 규모의 확대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를 밝히는 중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단순한 예산 증액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초·최고 성과를 창출할 시스템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 연구자들이 도전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고 성과에 맞는 보상이 주어지는 연구지원 체계가 구축됐을 때 우리나라는 선도형 기초연구를 통해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정병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bsjeong@k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