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매각’ 목적…국부 유출 우려
국내 기업, 막대한 투자 참여 부담
정부, 재무 평가·자본 조달 완화를
국내 해상풍력사업의 절반 이상을 외국 기업이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백조원 규모로 성장할 시장의 주도권을 외국 자본이 선점했다. 풍력발전산업 생태계 자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자신문이 8월 현재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총 88개 해상풍력발전 사업을 분석한 결과 이 중 48개 사업을 외국 기업이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비 용량 기준으로도 외국계 비중이 더 높다. 총 29.1GW 중 19.41GW로 비중은 66%에 달했다.
기업별로는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 기업 에퀴노르, 덴마크의 풍력 발전기업 오스테드와 투자운용사 CIP,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에너지스, 스페인의 오션윈즈, 독일 RWE, 태국의 비그림 파워, 싱가포르 뷔나에너지 등 세계 각국의 기업과 자본이 참여했다.
향후 해상풍력사업 관련 해외 기업 참여 비중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환경영향평가에 착수하지 않은 사업 용량은 14.6GW로 이 가운데 상당수가 사업권 매각을 목적으로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큰 손' 역할을 하는 외국 자본에 우선 매각될 공산이 크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금융, 민원 등 문제로 시장에 나온 사업권도 이미 외국 기업이 싹쓸이했다.
해외기업 쏠림 현상은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따르면 정부는 2038년까지 40.7G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 설비를 보급할 계획이다. 해상풍력발전은 1GW당 연간 7900억원가량의 전력·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전기사업허가를 받은 외국 기업 참여 사업의 설비용량을 감안한 연간 수익은 22조원, 20~25년에 이르는 전체 운영 기간 수익은 최대 380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내건 풍력발전 산업생태계 조성도 공허한 울림으로 끝날 수 있다.
외국 기업이 풍력 시장을 주도할 경우, 국산 기자재, 부품 등을 채택할 동인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재 외국 기업이 추진하는 사업 상당수가 유럽, 중국기업의 터빈과 설치 선박, 금융 등을 활용한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안은 국내 기업의 참여 확대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막대한 투자 비용이다. 해상풍력발전 1GW 기준 투자비는 5조원 안팎이다. 대기업 중에서도 사업에 나선 곳이 손에 꼽을 정도다. 태양광 위주로 재생에너지 보급을 주도해 온 발전공기업도 해상풍력 사업엔 선뜻 뛰어들지 못한다. 대규모 부채가 발생하는 사업 성격상 경영평가 등이 장애물로 작용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해상풍력 보급 목표를 달성하려면 외국 기업의 참여, 투자가 필요하지만 지나친 편중은 국내 산업 발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발전공기업의 재생에너지 투자 관련 재무평가 기준을 완화하고 한국전력의 재생에너지 사업 참여 기회를 늘리는 등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 해상풍력 입찰평가 지표에서 입찰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고 업체의 안보·공공 역할, 유지보수 역량을 새로 반영할 계획”이라면서 “발전공기업 등이 경영평가, 자본조달 관련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