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표한 통상정책 로드맵은 현재까지 진행한 정책을 연속선상에서 어떻게 할지에 대해, 경제안보를 강화한다는 측면에 방점을 뒀습니다. ”
정부 관계자가 최근 백브리핑에서 내놓은 통상정책로드맵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당초 지난 4~5월 정부는 '신통상정책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4개월여가 지난 후 '신(新)'을 뺀 통상정책로드맵을 내놨다.
앞선 정부 관계자의 말처럼 이번 로드맵에서 특별히 눈에 띠는 새로운 내용은 없다. 사실 통상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다거나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중대한 사안을 로드맵에서 공개하기엔 부적절하다.
그렇다면 이번 통상정책로드맵을 미국 대선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새로운 내용도 없이 발표했을까.
우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협상이나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비준 갈등, 공급망 사태 등 현안보다 로드맵 수립을 후순위로 미뤘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시기라 정부의 통상정책 방향을 대외적으로 공개하기에 오히려 적정한 시기로 판단했다고도 보여진다. 실제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브리핑에서 “발표시점에 대해 고민을 많이했다”면서 “미국 대선 구도가 확정된 때 해야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번 통상로드맵에서 핵심으로 다룬 'FTA·경제동반자협정(EPA) 확대를 통해 경제운동장을 넓힌다는 것'은 보호주의나 자국주의 흐름이 강한 환경인 가운데 상당히 적극적인 개방경제 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기조는 통상로드맵에 '한일중 FTA' 협상 재개를 언급한 데서도 엿보인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중간 갈등이 고조되는 시기에 삼국 협상재개를 추진한다는 것은 전략적인 판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일중 FTA는 현실적으로 타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겠지만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 충분히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다”면서 “우리로선 전략적으로 괜찮은 행보”라고 평가했다.
여전히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고 중국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부가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중FTA가 체결되긴 했지만 무역자유화의 정도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를 보다 견조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일중 FTA를 체결한다면 미중간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균형을 찾는 하나의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와 관련해서도 이러한 기조가 엿보인다. 정부는 CPTPP는 '다양한 국내 이해관계자 소통 등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주력한다'는 표현을 썼다.
CPTPP는 2022년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가입 추진계획을 의결했지만 농어민 반대와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해제 가능성 등이 거론되면서 잠정 보류된 상태다. CPTPP에 가입한 12개국 중 일본과 멕시코만이 우리와 FTA를 체결하지 않았다.
CPTPP는 수차례 논의됐지만 한중FTA와 병행해 협상을 하기엔 부담스웠던 초창기 분위기와 이후 부정적인 사회여론 등으로 가입이 요원했다.
이번 통상로드맵에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란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순화한 것은 엄청난 반대에 부딪힐 공산이 큰만큼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미뤄뒀지만 가입을 위한 노력은 지속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는 CPTPP 협상을 시작하는 순간 국내에서 내홍에 휩싸일수 있지만 무역자유화를 위한 방향성은 유지한다는 것이다.
올해 정부는 수출 7000억달러를 목표로 내세웠다. 각국의 보호주의적 흐름에서 개방무역을 통한 통상체제를 유지한다는 기조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불가피한 일이다. 이번 통상정책로드맵이 새롭진 않지만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이유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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