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오랜 기간 대학 강단에서 유전학(Genetics)을 강의했다. 현재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유전학이 일반유전학, 집단유전학, 분자유전학, 세포유전학, 의학유전학, 행동유전학 등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됐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에는 유전체학(Genomics)이 등장하면서 일반유전체학은 물론 질병유전체학, 암 유전체학, 약물유전체학, 영양유전체학, 운동유전체학, 기능유전체학, 비교유전체학 심지어는 계통유전체학으로 그 범위가 매우 특화 분류됐다.
유전체학을 기반으로 전사체학, 단백체학, 대사체학이 정립되며 이들을 모두 융합해 오늘날 '오믹스학 (Omics)'으로 탄생돼 의학계와 헬스케어 분야에 없어서는 안될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필자는 대학 강의에서 '유전학과 유전체학의 정의 비교' 그리고 '유전학이 생물학 범주일까, 의학의 범주일까'라는 질문을 종종 했다. 뜻밖에도 정답을 제시하는 학생의 빈도는 높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생명과학분야 전공학과에서는 매년 유전학을 공부하고 생화학, 분자생물학, 발생학, 생리학 및 분류학 과목에서도 일부 유전학을 다룬다. 하지만 그 당시 의과대학 교과목에 유전학은 1학기 강의가 전부라는 사실에 매우 놀란 적이 있다. 물론 의과대학에서 다뤄야 할 과목이 매우 많고 본과에 진학해서 의학유전학을 수강하지만 유전학을 질적, 시간적으로 충분히 공부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시간임에는 틀림 없었다.
2007년 구글에서 390만달러를 투자받은 미국의 '23andMe'가 본격적으로 유전자검사 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한국에서는 2012년부터 메디젠휴먼케어, 디엔에이링크, 테라젠이텍스 등이 의료기관을 통해서만 검사가 가능한 질병발생 예측 유전자검사 상품을 만들어 국내 상업적 유전자검사가 시작됐다. 국내는 해외와 달리 유전자검사를 의료기관의 의사가 의뢰하고 유전자분석 회사가 검사를 수행한 후 그 결과를 의료기관에 전달해 수검자가 받는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의료기관을 통하지 않는 소비자 직접시행(DTC) 유전자검사는 아예 법적으로 검사를 할 수 없었다. 2016년이 돼서야 정부는 'DTC 유전자검사 민관협의체(정부, 의료계, 윤리계, 학계, 법조계, 산업계)'를 구성해 유전자검사 대중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도했다. 의료계와 윤리계는 현실과 거리가 먼 이론적인 이유로 거센 반발을 했고 다른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유전자검사 항목대비 극소수만 허용해 사업적 타당성이 없다고 주장한 산업계의 반발을 뒤로 한 채, 질병 항목이 배제된 웰니스 분야의 12개 항목만 법적 규제로부터 조건부 개선으로 시장에 선보이게 됐다.
의료계 중에서도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들은 상업적 유전자검사에 대한 반발을 매우 거세게 했으며 이 때문에 다수의 유전자분석 기업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됐다. 심지어 이들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을 산업계(산업계 내에 유전체 전문가가 다수 종사)를 철저히 배제한 채 구성해 전체적인 유전자검사 사업을 컨트롤 했으며 유전자분석 기업의 검사실 운영, 정확도 판정, 새로운 규제 등을 의료기관 검사실 운영에 맞춰 산업계를 통제하고 있다.
DTC 유전자검사의 경우, 컨트롤타워가 '국가생명윤리정책원(국생원)'이다. 이 기관 또한 산업계의 유전학 박사(전문가)가 포함돼 있지 않고 윤리적 이론으로 국내 산업계와 해외 사례의 현실 상황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규제로 제한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보건복지부 담당부처는 의료, 헬스케어, 윤리, 산업 분야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의견을 수렴해서 과감한 규제 개선과 국민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새로운 산업을 열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고 규제도 필요하며, 때에 따라서는 산업의 방향을 보고 적절한 통제도 필요하다. 선진국은 포지티브 규제보다는 네거티브 규제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산업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의 미래 먹거리는 반도체, 이차전지, 항공, 방산 등도 있지만 바이오와 헬스케어 분야를 배제하고는 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미래 산업이 심한 규제로 인해 활동이 제한된다면 많은 연구개발(R&D) 자금을 들여 개발된 신기술과 신제품을 사장시키는 것이며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 몽골, 동남아시아, 중동 국가들로부터 한국의 유전체분석 기술과 유전자검사 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정부는 주목해야 한다.
신동직 메디젠휴먼케어 대표 shindj@medizenca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