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이 유럽연합(EU) 디지털시장법(DMA)의 파급력 분석 결과, 우리나라에 유사한 규제를 도입할 경우 기업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 입을 모았다.
29일 고려대학교 기술법정책센터가 '디지털 플랫폼 규제의 이슈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EU DMA와 같은 강력한 경쟁법이 우리나라 시장 상황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세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EU의 DMA 집행의 속도감을 조명하며 EU 내 빅테크 서비스 운영 규정이 급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게이트키퍼와 핵심플랫폼서비스(CPS) 지정, 시장조사, 이후의 집행 절차 등에 있어 집행위가 매우 빠른 템포를 보이고 있다”며 “이에 따라 제3자 결제 허용, 앱 마켓 수수료 30% 변화 등 EU 내 빅테크 서비스 운영 규정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럽 현지에서 조차도 DMA 도입·집행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 측은 거대 디지털 플랫폼 행태를 규제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경쟁법이 탄생했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반대 측은 규정이 불명확해 게이트키퍼가 규칙에 부합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과 효율 향상이나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한국 시장 내 플랫폼 규제 적용에 대한 신중론도 나왔다. 시장 맥락을 면밀히 분석한 후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승민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 디지털 플랫폼 규제 동향의 이슈와 과제에 대해 발표하며 야당이 발의한 7개 법률안에 대한 문제점과 의문점을 제기했다. 역외적용의 불확실성, 이중 규제, 표준 계약서의 부적합성 등을 지적했다. 모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다는 점도 짚었다.
이 교수는 법적 분쟁 빈발에 따른 기업의 부담 증가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시장이 구조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기울거나 이같은 우려가 현저한 경우에만 사전규제를 통해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규제와 육성의 균형, 시장기능의 존중, 규제의 유연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구글 및 애플 등 시장지배력이 확고하고 진입장벽이 높으며 가격 인상을 통한 소비자 후생 저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시장에는 사전규제가 필요한 반면, 시장 경쟁이 치열하고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오픈마켓·전자상거래 시장 내 규제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며 “규제가 필요한 상황인지, 어떤 규제가 필요한지, 누가 규제를 할 것인지 등을 먼저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규제가 오히려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영기 인기협 국장은 “경쟁을 통해 일자리가 많이 늘었다는 보고서가 있으나, 반독점 집행 조치에 따른 매출 증가 효과는 거의 없고 오히려 규제 준수를 위한 추가 인력 채용, 교육 장비 시설 투자 등의 비용이 발생해 비즈니스 측면에서 매출은 늘지 않았다”며 “단순히 플랫폼 산업 내의 경쟁이 아니라 향후 국가 간의 경쟁 측면을 고려하면서 규제 설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자율규제와 법적규제의 혼합 필요성을 짚었다. 자율규제를 보완해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천지현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정한 자율규제를 심화하되 자율규제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제도를 마련해나갈지 고려해 보겠다”고 밝혔다.
정건영 과기정통부 디지털플랫폼팀장은 “기술 변화나 발전이 빠른 디지털 산업에서는 분명히 자율규제가 가진 장점이 있다고 본다”며 “다만 자율규제는 법적규제와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실효성 강화를 위해서 관계 부처가 조금 더 노력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설민 공정위 디지털경제정책과장은 “티메프 사태는 부도덕한 경영인 한 명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며 “자율규제를 하되 제도 보완은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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