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4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은 'SDX(Software-Defined Everything)' 비전을 공유하고, 새로운 SDV(Software-Defined Vehicle)를 위한 아키텍처와 핵심 기술들을 선보였다.
그간 자동차에 편의 기능을 채우는 방식의 전통적인 완성차 기업으로서의 행보를 탈피하고, 제품과 소프트웨어(SW)를 모두 제공하고 유지·운영하는 방식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한 이 변화의 도전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현대자동차그룹은 국내 자동차 부품 중소기업이 SDX 기반의 미래 자동차 전환에 필요한 SW 기술을 내재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작년 11월 '오픈소스 SW 기반 디지털 전환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은 바 있다. SW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 구조 변화의 흐름에 적극 동참하기 위함이다.
인공지능(AI) 등 SW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혁신은 자동차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제조산업에서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특히 오랜 시간 하드웨어(HW)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 온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는 SDX 기반으로 산업 구조 재편과 서비스 산업으로의 확장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체제로의 전환이 더욱 시급하다.
SDX 전환의 핵심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SW 기획과 설계는 물론 개발까지 가능한 역량을 확보하는 데 있다. SW 구매나 아웃소싱 등으로 SW 기술을 임시로 수급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진정한 SDX를 구현하는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산업에 특화된 SW 전문성을 확보하고 다양한 역량을 보유한 기업 간의 협업이 가능한 생태계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이는 개별 기업들의 자구적인 노력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
NIPA는 이러한 산업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첫째, NIPA에서 올해 추진하고 있는 'XaaS(X:Industry as a Service) 선도 프로젝트'는 비디지털 기반의 전통 산업 제품이나 프로세스 등을 디지털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산업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SW 서비스 모델을 창출함으로써 모든 산업의 서비스화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예를 들어 구축형 방식의 로봇 제어, 관제 등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전면 전환함으로써 수요처는 물론, 로봇 제조사, 로봇 운용체계(OS) 개발 기업 등이 통합된 서비스 로봇(Robot as a Service)을 통해 로봇의 도입과 활용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춰 병원, 공장 등 다양한 영역으로 로봇이 확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 SDV를 필두로 하는 첨단 모빌리티 분야는 국가에서 지정한 3대 핵심 국가 전략기술 중에서도 특히 SW의 중요성이 크고 핵심적인 분야로, 모빌리티(HW)와 SW의 융·복합이 필수적인 영역이다.
무엇보다 자동차산업은 SW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차로의 전환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반드시 우위를 선점해야 하는 주요 기술 분야로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
이를 위해 2025년부터 첨단 모빌리티 분야를 대상으로 그간의 연구개발(R&D) 결과와 오픈소스를 HW에 적용해 부족한 SW 경쟁력을 빠르게 키워낼 수 있도록 오픈소스 활용을 위한 기술 컨설팅 및 테스트 환경 등 SW 개발 환경과 서비스 개발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자금 역량이 부족한 부품 제조 중소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첨단 모빌리티 생태계로 중소기업들이 진입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전체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빠르게 조성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SDX를 완성하기 위해 SW 안전과 품질 강화를 위한 심층적인 연구와 지원을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첨단 모빌리티 분야의 경우 작은 오류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자칫 SW 안전 이슈가 SDX 혁신을 늦추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SW 안전 이슈 도출, 안전 기준 수립 및 효율적인 SW 안전 관리 체계 등 SDX 기반의 산업 혁신에 필요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SDX는 SDV뿐만 아니라 드론, 로봇 도심항공교통(UAM) 등이 연결되는 새로운 모빌리티 생태계로 확장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 산업에서 여러 산업으로 확장되고 파생되는 SDX 이어달리기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견고하게 내재화된 SDX 역량은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진출의 문턱도 낮출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SDX는 개인의 일상부터 산업의 근간까지 바꾸는 디지털 혁신의 핵심이다. 그 변화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이 발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도에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정진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러 분야에 필요한 기반을 조성하고,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NIPA는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허성욱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 nipapr@nipa.kr
〈필자〉허성욱 NIPA 원장은 1993년 한양대 전자통신공학과를 졸업하고 기술고시를 통해 체신부에서 공직자 생활을 시작했다. 영국 요크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과 석사를 받았다. 정보통신부에서 인터넷정책과장, 네트워크기획과장, 정보보호기획과장을 거쳐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파견 근무했다. 2018년 이후 청와대(과기보좌관실) 선임행정관, 기획재정부 혁신성장정책관을 역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 네트워크정책실장 등 주요 요직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