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플래그십 과제를 통해서

박현욱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전 교학·연구부총장)
박현욱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전 교학·연구부총장)

2021년 12월 25일 발사되고 198일동안 항해를 해 2022년 7월 11일 첫 영상을 공개한 '제임스 웹 천체 망원경' 얘기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1600년대에 뉴턴에 의해 처음 개발된 직경 3㎝ 거울형 망원경 이래로 더 멀리 보고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망원경 개발을 위한 노력이 계속돼 왔다.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 거울 직경을 크게 하고, 주변 잡음을 줄이기 위해서 빛이 없는 산속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외부 기온 차이에 따른 망원경 성능 변화를 줄이는 노력을 해오다 급기야 지구 밖에 망원경을 설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제임스 웹 망원경은 직경이 6.5m로서 처음 우주에 설치됐던 '허블 망원경' 2.4m에 비해 훨씬 크며, 설치 위치도 지구로부터 150만㎞(지구와 달의 거리보다 네 배 이상 먼 거리)에 위치한다.

제임스 웹 프로젝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주관하고 유럽, 캐나다와 국제공동연구로 수행됐다. 이 과제는 1996년에 시작돼 발사될 때까지 25년 동안 진행됐으며, 수천명 과학자와 공학자가 참여했고 약 100억달러 예산을 사용했다고 한다.

연구개발(R&D) 기간과 예산 등 규모 면에서 우리와는 관계없는 미국의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는 인류에 대한 기여와 새로운 발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며, 참여한 연구자들은 물론 모든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데 투자 이상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규모 면에서는 한참 적지만 이와 같은 '플래그십' 과제가 있었다. 이동통신 근간이 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개발과 인공위성 발사체 개발 등이 있으며, 대학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우리별 위성 개발이 여기에 속할 수 있겠다.

1986년 설립된 과학기술대학(KIT, 1989년 KAIST와 합병)이 플래그십 과제로 1989년에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992년 우리별 1호를 성공적으로 개발한 이후 우리별 2, 3호와 과학기술위성 1, 2, 3호 개발에 연이어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 인공위성 기술이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될 때에, 인력을 양성하고 연구과제를 만들어서 지금과 같은 소형 인공위성 강국이 될 수 있게 됐다. 그 당시 양성된 연구인력들이 인공위성 관련 기업체를 창업하고 키워서 지금은 중견기업으로 발전해 전 세계 인공위성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충분한 역량을 가진 정부출연연구기관들과 연구중심 대학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단기 실적을 중시해 왔다. 이제 우리 연구주체들이 대형 장기 플래그십 과제들을 기획하고 진행해서 인류의 난제도 풀고, 새로운 산업도 열고, 또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플래그십 과제라 해서 모두 제임스 웹 과제와 같이 많은 예산과 많은 인력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잘 찾아보면 훨씬 더 적은 예산과 인력으로 가능한 과제도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오래 기다려주고 격려와 지원을 해 주는 인내는 필요하다.

우리나라 연구기관들과 연구중심 대학들이 각각 나름의 플래그십 과제를 추진한다면, 매년 한두개씩의 플래그십 성과들로 인해 인류의 과학기술에 대한 기여는 물론 우리 국민의 자긍심이 증대될 수 있겠다는 꿈을 가져본다.

박현욱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전 교학·연구부총장) hwpark@kaist.ac.kr